‘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인들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백석(1912∼1996)의 아름다운 시와 애틋한 사랑,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던 삶이 무대 위에 펼쳐진다. 기생 자야와의 연애담을 다룬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왼쪽 사진)와 해방 이후 행적을 조명한 연극 ‘백석우화’(오른쪽)다. 굴곡진 시대를 만난 천재 시인이 사랑과 시를 잃고, 스러져 가는 모습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연출 오세혁)는 백석의 대표적인 동명 시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자야의 회상이 이끌어가는 뮤지컬은 두 사람이 처음 함흥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다시 경성에서 재회해 청진동과 명륜동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을 주로 다룬다. 제목이 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뿐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 ‘여승’ ‘내가 생각하는 것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 토속적이면서도 모던한 백석의 시들이 피아노 선율을 타고 잔잔하게 흐른다. 특별한 무대 장치는 없다. 단출하지만 고즈넉한 대나무 숲이 자야의 꿈과 회상으로 전개되는 극의 몽환적인 느낌을 잘 살리며,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자야의 본명은 김영한(1919∼1999). 3공화국 시절의 유명 요정 대원각의 주인으로 1987년 1000억 원대 재산을 시주해 길상사를 건립하게 했다. 그는 에세이집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에서 자신이 ‘나타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올해 예그린뮤지컬어워드 남우주연상을 받은 강필석이 백석으로 분한다. 내년 1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동 드림아트센터. 02-541-7110

오는 30일 개막하는 연극 백석우화(연출 이윤택)는 연희단거리패가 선보인 음악극으로, 지난해 대한민국연극제 작품상과 연기상을 받는 등 평단과 관객의 인정을 받은 수작이다. 백석우화는 백석의 해방 후 삶을 집중 조명한다.

자야와 헤어지고 만주로 떠난 백석은 고향인 평북 정주로 돌아갔으나, 분단이 되면서 다시는 자야와 만날 수가 없었다. 남한에선 출판금지를 당하고, 북한에선 쓰기를 제약당하면서 백석이 서서히 남북한 모두에서 잊힌 존재가 되는 과정을 담았다. 백석은 처음 1960년대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집단농장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996년 세상을 뜬 것이 확인됐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나타샤를 자야로 간주하고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백석우화는 통영 처녀 란이, 시인 노천명, 소설가 최정희 등을 모두 거론하며, 여전히 나타샤의 정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함을 보여준다. 12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 1899-4368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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