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진 前 해병대 사령관 해병대전략연구소 소장

11월 23일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6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 이날을 기억하는 지도자나 국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핵과 미사일 위협이 도를 더해가고 있는 이때, 북한 김정은은 지난 11일 백령도 동쪽 황해남도 옹진군 마합도에서 포 사격훈련을 참관하고, 13일에는 연평도 코앞에 있는 갈리(갈)도 전초기지와 장재도 방어대를 시찰, 박정천 포병국장으로부터 서남전선 포병부대들의 ‘새로 재조직한 연평도 화력타격계획 전투문건’을 승인했다고 한다. 뭔가 새로운 타격계획이 수립됐다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시험하려 할 것이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의 불법적인 선제포격으로 시작된 연평도 포격전은 오후 3시 41분 우리 K-9 자주포의 개머리 원점타격으로 종결됐다. 저들은 170여 발을 사격, 90여 발이 바다로 빠졌고, 80여 발이 군부대와 민가 지역에 떨어져 군인 2명 전사, 16명 부상, 민간인 사망 2명, 부상 3명과 다수의 가옥 전소 등 피해를 봤다. 우리는 무도와 개머리 지역에 80발의 대응사격을 했다. 쏟아지는 적 포탄 속에서 대응 포격을 했던 연평부대 포 7중대는 참으로 잘 싸웠다. 알려지기로는 북한군 40여 명이 사상했다고 한다.

공군 F-15K 전투기가 출격하기는 했으나, 아쉽게도 우리의 막강한 공군력과 해군력은 응징의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했다. 8개월 전에 3·26 천안함 폭침을 당하고 그렇게도 외치고 다짐했던 응징 보복은 8개월 후 연평도 피폭 시 실제로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이 전투는 연평도의 1개 포대가 절대 우위에 있는 적 포병에 대항한 포격전이었다. 비록 먼저 당하기는 했으나, 우리가 승리한 전투였다. 이제는 이 도발을 ‘북 연평도 포격도발 6주년’이 아니라, ‘연평도 포격전 승전(勝戰) 6주년’이라는 승리의 역사로 기억되게 해야 한다.

적의 목에 비수(匕首)와 같은 서북도서는 주적(主敵) 북한의 도발 최우선순위에 있는 한반도의 화약고다. 잠시라도 경계의 끈을 늦춰선 안 되는 곳이다. 우리 군은 다음 사항들을 유념해야 한다.

첫째, 흔들림 없는 확고부동한 군 통수권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국가 통치권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 위중한 시기에, 만에 하나라도 유사시 군 통수권 행사가 흔들리거나 방해를 받는다면 우리는 치명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어느 누구도 군 통수권을 볼모로 국가 안보를 흔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둘째, 군은 응징의 수단과 방법에서 미흡한 부분이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현존하는 합참 유일의 합동군사령부이며, 서북 5개 도서의 방어는 지·해·공 전력의 완벽한 합동성을 발휘해야 하는 대한민국 유일의 전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 작전부대 수준의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 연평도는 적지로부터 4㎞, 백령도는 11㎞ 떨어져 있는 고립된 섬들이다. 군사·지리적 위치상 적의 막강한 화력과 공격의 위협에 24시간 노출돼 있는 곳이다. 저들이 먼저 때리면 달리 피할 수가 없고,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곳이다. 따라서 이곳의 작전은 먼저 맞더라도 얼마나 빨리 전투력을 복구하고 공격 응징 모드로 전환하느냐 하는 타이밍이 그 생명이다. 만약 제2의 연평도 포격도발이 일어난다면 합참과 서북도서방위사령부는 서북 도서로 하여금 적의 공격을 신속히 극복하고, 단호하고도 결정적인 보복 응징을 해야 하는 시험대 앞에 서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오늘도 서해고도 해안의 칼바람 속에서 전의를 다지며 경계에 전념하고 있는 서북도서 장병 모두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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