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 공유되지 못한 사회만큼 암담한 것은 없다.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을 총리 하나 추천할 능력이 없는 정치권에 탄핵 이후의 로드맵까지 그려내라는 게 애초부터 무리였을지 모른다. 청와대와 친박(친박근혜)그룹은 버티기에 돌입했고 야권은 퇴진 투쟁만 외치고 있다. 여든 야든 탄핵 국면 이후, 단임 대통령제와 후진적 정당정치가 몰고 온 미증유의 위기를 대체할 합의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머리가 없거나 책임감이 없거나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은 이렇게 묻는다. 누가 대한민국의 비전을 선취(先取)하는가. 누가 정경유착과 대통령의 권력독점이라는 앙시앵 레짐을 대체하는 새 패러다임을 제시하는가. 이 정권만 끝장내면 희망은 저절로 오는 것인가. 대통령만 바뀌면 모든 게 정상화되는 건가. 민심의 ‘리더’는 없고 촛불 ‘팔로어’들만 설치는 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우리 경제가 팔로어에서 ‘무버’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정치권의 팔로어 근성 때문이다. 이대로 권력만 교체된다면 불행은 되풀이될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쓴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를 다시 인용하면,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
30년 전 폭압적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6월항쟁 때에는 ‘호헌 철폐’와 ‘직선제 쟁취’ 구호가 짝을 이뤘다. 앞엣것은 현재 가치의 부정, 뒤엣것은 미래 가치의 제시였다. 구체적인 비전을 실현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불온한 현실을 밀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그건 야권 리더들의 국민에 대한 헌책(獻策)이었다. 비전이 있으므로 책략이 통했다. 이후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정치권은 앞선 세대가 일궈놓은 모범적 성과조차 승계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에 짝을 이룰 미래 가치가 없으니 새 세상을 만드는 책략도 없고 투쟁 전략도 중구난방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범죄 혐의와 침묵의 동조자였던 여권의 행태에 몸서리치면서도 야권의 무능과 무책임에도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근본적으로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에서 비롯됐다. 집권자가 비선과 당외 조직에 포획되고, 5년 임기 내에 뭔가 이뤄내야 한다는 단기성과주의 유혹에 중독되며, ‘프레지덴셜 프로젝트’ 굴리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의회 권력을 적으로 만들고 민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바로 그 후진성이다. 독선과 독주의 끝은 파국이다. 모든 권력자가 걸어온 길이다. 대통령을 불행하게 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헌정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무한 책임’의 대통령과 ‘무한 무책임’의 국회, 두 선출 권력의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방안을 내놓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을 반복되는 비극에서 구해낼 수 없다. 이게 ‘개헌’을 해야 할 이유다.
국정농단은 단죄돼야 한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라면 응징을 넘어 탄핵 국면 이후의 공유된 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게 진짜 리더의 역할이다. 정치권이 더 좋은 민주정과 공화국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한 개헌 담론을 뒤로 물린 채 목전에 닥친 대선 수 싸움만 벌인다면 차기 대통령도, 여도 야도, 모든 국민도 또다시 닥칠 비극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minski@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