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서사학 / 김태환 지음 / 문학과 지성사

의인화된 동물을 등장시킨 짧은 이야기의 모음인 ‘이솝우화’가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건 간명하고 직설적인 메시지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단순하고 직설적인 이솝우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읽어낸다. 저자의 말대로 ‘간단하고 뻔한 의미를 지닌 우화’가 ‘터무니 없을 만큼 진지하고 복잡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솝우화를 단순한 교훈담이 아니라 ‘어떤 특정한 교훈으로 환원되거나 그러한 교훈을 전하는 단순한 도구가 되기를 거부하는’ 근대문학의 독법으로 우화를 들여다본다. 이를 테면 저자의 독법은 이런 식이다. 먼저 이솝우화의 내용. 개미가 땀 흘려 일하는 여름에 매미는 즐겁게 노래했다. 춥고 먹을 것이 없는 겨울이 오자 매미는 거지가 돼 개미를 찾아온다. 개미는 편하게 살고 있지만 매미를 박정하게 대한다. 흔히 ‘개미와 베짱이’란 제목으로 알고 있는 이솝우화다.

저자는 이 우화에서 ‘일은 좋은 것’이고 ‘놀이는 나쁜 것’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들여다보고, 이런 시각이 일의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여름과 일의 가치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계절인 겨울과 중첩돼 있다고 분석한다. 우화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시간’은 가을이다. 개미는 안락하고, 매미는 고통스럽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똑같은 이야기 속에서 다른 시간관에 따라 구조화되는 이야기의 가능성을 묻는다. 혹독한 겨울을 어렵게 구걸하며 살아낸 매미가 이듬해 여름 다시 즐겁게 노래한다면? 여름에 모은 식량으로 겨울을 난 개미가 이듬해 여름에 다시 죽도록 고생스럽게 일을 하게 된다면? 저자는 이때 무엇이 진실인지를 묻는다. 결국 이 이야기는 개미와 매미, 일과 놀이, 여름과 겨울 사이의 끝나지 않는 공방이 된다는 것이다. 또 늑대의 목구멍에서 가시를 빼준 학이 약속했던 보상은커녕 늑대로부터 ‘내 입 안으로 머리를 넣고 무사했다는 사실을 고마워하라’는 위협을 듣는 이야기 속에서는 계약 위반과 약자에게서 정당한 보수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정당성마저 갈취하려 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지적한다.

책에는 40편의 이솝 우화가 등장한다. 익숙한 우화를 비틀어 읽어가며 다양한 서사학 이론을 꺼내 들고 맛보는 해석의 즐거움이 각별하다. 이솝우화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에 대한 책에 더 가까운 셈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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