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30%를 넘나드는 KBS 2TV 주말극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서 반전과 발견의 재미를 안겨주고 있는 배우 차인표(49)를 만났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광화문 촛불집회 이야기를 하지 않고 드라마만 논할 수는 없었다. ‘조용히’ 행동으로만 말하고자 했을 그를 자칫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차인표는 최근 경기도 파주 광고 촬영현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토요일에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조용히 나갔다 오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그 말을 실천으로 옮겼고, 많은 이들에게 목격됐다.
2시간 동안 가진 인터뷰에서 차인표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마디마디 홀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심경을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이 시청률 30%를 넘나들며 인기다.
▲ 시청률이 30%가 넘는 드라마를 10여 년 만에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같아 가장 기쁘다. 어머니가 아주 좋아하신다. 드라마에 같이 출연하는 이동건도 자기 부모님이 즐겨보시는 주말극에 출연하고, 그게 잘되고 있어 기쁘다고 하더라.
주말드라마는 그야말로 시청자가 안방을 열어줘야 시청률이 나온다. 흔히 (TV를) 안방극장이라고 하는데, 친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안방으로 안 들이지 않지 않나. 그런 점에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대중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한 주 동안 이런 일, 저런 일 있다가도 주말에 한시름 탁 놓고 싶을 때 주말극을 보는 거 아닌가. 시청자가 그런 한시름을 놓는 데 일조하는 것 같아 기쁘고, 여러 가지로 지친 시청자에게 잠시라도 휴식하는 시간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 요즘처럼 주말 촛불집회가 이어질 때는 시청률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은 건재하다.
▲ 나 역시 시청률이 떨어질 줄 알았다. 뉴스에 한 사람 얼굴만 계속 나오고 그 뉴스에 온 관심이 쏠린 이때, 당연히 드라마에 관심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사람들 마음은 다 똑같더라. 잠시라도 쉬고 싶은 거다.
나라가 이 꼴인데 내가 도대체 뭐 하고 있나 싶다가도, 시청률이 높은 것을 보면 주말에 다만 한 시간 만이라도 시청자들의 시름을 덜어주자는 책임감이 든다.
시국이 이런데 드라마가 무슨 소용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라.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며 좋은 드라마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줘야 하는 거구나 느꼈다.
-- ‘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떠한가.
▲ 국민이 이렇게 소리 높여 한마음으로 외치는데 변화가 없으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뉴스에서 너무 떠드니까 우리가 뭔가 최면에 걸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분명한 것은 비정상이 정상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점이다. 비정상적인 일들이 판을 쳤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이 파괴되도록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악화가 아니라 양화를 얘기해야 한다. 비정상에 지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목소리를 내는 동시에, 흔들리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 “난 원래 배삼도 같은데 사람들이 몰라”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서 코믹한 서민 연기로 화제
많은 이들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인기 중심에 차인표가 있다고 말한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배삼도-복선녀 부부를 연기하는 차인표와 라미란의 쿵짝이 참신하고 코믹해 극의 핵심적인 활력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동안 재벌, 정치인, 의사 등 각 잡히는 ‘있어 보이는 역할’에 치중했던 차인표가 오랜만에 코미디로 돌아선 것이 흥미롭게 다가오고 있다.
외모는 누구보다 근사하고 의협심도 강하지만, 가진 게 없어 늘 부인한테 꽉 잡혀 사는 배삼도는 사실 여느 드라마서 보아온 캐릭터다. 그러나 차인표가 연기함으로써 다르게 다가오고 있다.
-- 배삼도가 인기다. 차인표가 배삼도를 연기하는 게 신기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 제가 생각하는 저랑,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 사이에 굉장히 큰 간극이 있구나 새삼 느꼈다. 나는 원래 배삼도 같다.(웃음)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차인표는 실제로 유머 감각이 넘치고 다정다감하며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다. 그가 쓴 소설만 봐도 그의 몸에 밴 익살과 소탈함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에서 서민층 연기도 오랜만이다. ‘그대 그리고 나’(1997~1998) 때 군대에서 제대한 뒤 헛꿈을 꾸는 껄렁껄렁한 백수를 연기했고, ‘왕초’(1999)에서 거지를 연기한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다른 역할도 좋은 것들이 있겠지만, 배삼도는 제 나이 또래 남자 배우가 맡을 수 있는 최고의 역할인 것 같다.
-- 그래도 배삼도 역할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은 없었나.
▲ 사실 우여곡절이 좀 있었다. 지난 4월에 대본을 받았는데, 그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출연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미국에 가족과 함께 있을 때였는데, 할리우드 캐스팅 디렉터가 이메일로 오디션 제안을 했다. 한달에 걸쳐 2차까지 오디션을 봤고 이후 제작사 부사장과 인터뷰까지 진행된 상황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캐스팅이 성사됐다고 생각할 수 있을 때였다. 총 6명이 출연하는 영화였는데 그중 한명으로 오디션을 본 거였고, 캐스팅이 되면 7~10월 런던에서 촬영을 해야하는 일정이었기에 그렇게 되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할 수 없는 거였다.
그런데 막판에 확답이 바로 안 왔다. 제작사에서 내 역할을 놓고 중화권에서 먹힐 배우도 찾아보는 것 같길래 더 기다리지 않고 드라마를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한 것보다 이 시기에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을 한 게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든다. 어르신들이 이리 좋아하시니 너무 잘됐다 싶다. 20년 전에 007 영화를 거절한 게 잘한 일이었는데, 이번에도 선택을 잘한 것 같다.
-- 배삼도는 양복 장인인데 실제로 손재주가 있나.
▲ 전혀 없다.(웃음) 이동건한테 농담삼아 “이 드라마 끝날 때쯤 내가 진짜 양복 하나 만들어줄까” 했는데 턱도 없는 일이다.(웃음)
얼마 전 양복 제작 경진대회를 찍었는데 전국에서 실제 양복 장인 10명이 촬영을 위해 올라오셨다. 우리는 촬영용으로 몇 장면만 필요한데, 그분들은 몇 시간 동안 꼼짝 안고 소처럼 고지식하게 실제로 양복을 만드시더라. 말 그대로 한땀 한땀 만드는 데 정말 감동했다. 저런 사람들이 정말 장인이구나, 저런 자세대로 배삼도를 연기해야겠구나 새삼 느꼈다. 그날 양복 장인들의 뒷모습을 보는데, 저리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 먹여 살리고 공과금 내며 살아오신 분들이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 라미란 씨와 호흡은 어떤가.
▲ 사실 라미란 씨를 잘 몰랐다. 작가가 배삼도-복선녀를 차인표-라미란을 놓고 썼다길래,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응답하라 1988’의 라미란 씨 부분을 쭉 찾아서 봤는데 연기를 정말 잘하더라. 같이 하면 좋겠다 싶었다.
라미란 씨가 자기 기사의 댓글을 다 본다더라. 예민하다는 건데, 그래서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
-- 최근에는 배삼도가 달밤에 복선녀랑 왈츠를 추는 로맨틱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 그 장면 찍으면서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나도 한번 아내랑 춰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어느 때고 함께 출 수 있는 거 아닌가. 춤선생이 촬영장에 와서 지도해줘서 찍은 건데, 라미란 씨는 춤에서도 정말 특별나다. 나는 몸치다.(웃음)
# “신애라에게 장가가기 진짜 잘했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창작 활동”
차인표는 현재 기러기 아빠다.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2년 더 기러기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 같다.
2014년 3남매를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난 그의 부인 신애라(47)가 석사에 그치지 않고 박사 과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촬영이 없을 때면 미국으로 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차인표는 “배우자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데, 그런 면에서 나는 장가를 진짜 잘 갔다”며 활짝 웃었다.
-- 신애라 씨는 언제 돌아오나.
▲ 2년 예정으로 석사 과정만 밟기로 하고 떠났는데, 이미 석사는 끝났고 다시 박사과정에 돌입했다.(신애라는 현재 캘리포니아 히즈 유니버시티에서 기독교 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긴 것이다. 내가 아직 경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으니 다행이다. 공부하면서 애 셋도 돌보느라 많이 힘들 텐데 그래도 늘 에너지가 넘친다. 아내가 지금 오렌지카운티 시장 선거에 나가도 당선될 것 같다.(웃음) 시장에 나가면 모르는 사람이 없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 하느라 바쁘다.
-- 어떤 공부를 하나.
▲ 기독교 상담학을 공부하고 있다. 아내는 어떻게 하면 고아를 줄일 수 있을까에 집중하고 있다. 또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을 일정 기간 돌보는 위탁가정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고 홍보에 전념하고 있다.
1년에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만 50~60명의 한인 청소년이 부모를 잃는 등의 이유로 갈 곳이 없어진다. 아내는 그렇게 된 한인 청소년만큼은 한인들이 맡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미국에 한인들이 많지만 갈 곳 잃은 한인 아이들을 입양하는 데는 인색하다. 한인들이 손을 놓은 사이 보조금을 노린 멕시칸들이 그들을 위탁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잃은 것도 충격인데, 전혀 다른 문화권의 가정으로 들어가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경우 많은 아이들이 가출을 하거나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에 한인 교회와 한인 모임이 많은데 아내는 그런 곳들을 중심으로, 부모 잃은 한인 아이들은 우리가 담당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1995년 결혼한 차인표-신애라는 슬하에 아들 정민(18)을 낳은 뒤, 2005년과 2008년 두 딸 예은(11)과 예진(8)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 기러기 아빠 생활이 힘들지 않나.
▲ 요즘 홀로 되신 어머니랑 살고 있다. 2013년 동생이 먼저 하늘나라로 가면서 어머니가 많이 상심하셨는데, 기러기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효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머님께 불효인 것 같다. 혼자 편하게 사시다가 갑자기 다 큰 아들 삼시세끼 챙겨주시고 돌봐주시게 됐으니 효도가 아니라 내가 어머니께 신세 지고 있는 거더라.(웃음) 텃밭에서 농사 지으신 채소로 밥을 해주시고, 촬영장 가면 도시락도 싸주신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어머니랑 함께할 시간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같이 지내는 시간을 갖게 돼 기쁘다.
-- 배삼도로 오랜만에 변신도 했는데 다음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 내게 연기를 앞으로 계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변곡점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창작이다. (그는 소설 ‘잘가요 언덕’과 ‘오늘 예보’를 낸 작가이기도 하다.) 한동안 안 썼더니 어렵기도 하지만, 지금껏 남이 써준 대본으로 연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드라마 대본이든, 영화 시나리오든 내가 써보고 싶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배우에서 창작의 길로 접어들어서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물론 연기도 같이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돈은 그동안 과분하리만치 벌었다. 돈은 후배들 밥이라도 살만하게만 있으면 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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