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델 카스트로 타계… ‘극과 극’ 평가속 장례일정 시작
쿠바선 애도, 망명인들 환호
火葬 뒤 30일부터 전국 순회
내달 4일 산티아고 묘지 안장
28일 장례 일정이 개시되는 ‘쿠바 혁명의 아버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타계에 대해 쿠바인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쿠바에서는 애도 분위기가 강하지만, 정치적 억압을 피해 망명한 쿠바계 미국인들은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또 카스트로 전 의장이 혁명가인지, 독재자인지를 놓고도 ‘극과 극’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7일 CNN 등에 따르면 쿠바 정부는 지난 25일 90세로 타계한 카스트로 장례 일정을 28일 오전 9시부터 예포 21발과 함께 개시한다.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 29일 정오까지 추모 공간이 마련되고, 같은 날 밤 대규모 추모 집회도 예정돼 있다. 이후 화장된 카스트로 유해는 30일부터 전국을 순회한 뒤 12월 4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된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카스트로의 고향 비란에서 가까운 곳으로, 32세의 카스트로가 1959년 쿠바 혁명의 승리를 선언한 ‘혁명의 도시’다.
쿠바는 애도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dpa 통신은 전했다. 아바나의 식당은 문을 닫았고, 번화가인 23번가에서도 음악 소리가 사라졌다. 세계적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쿠바 공연도 취소됐다. AFP통신은 “야구경기 관람도 금지됐고, 일부는 카스트로가 공부한 아바나 대학 앞에서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쿠바계가 대거 거주하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리틀 아바나’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들은 미국·쿠바 국기를 함께 들고나와 흔들거나, 일부는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만큼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었다. 지지자들에게는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에도 불구, 1956년부터 게릴라전을 통해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는 데 성공한 ‘혁명의 화신’이었다면, 반대에서는 57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스트로는 1차 혁명 실패 뒤 투옥된 상태에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명문을 남기고, 10명의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중남미·아프리카 좌파 혁명을 지원한 20세기 냉전시대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쿠바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 러시아·이란이 “20세기 식민 체제를 파괴하고, 강대국 식민주의에 맞선 독보적 인물”로 카스트로를 평가한 배경이다.
하지만 1962년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맞짱’을 떴던 카스트로도 1990년대 냉전 해체 이후 쿠바의 경제적 쇠락을 막지는 못했다. 또 공산당 일당독재와 반대파에 대한 탄압 등은 독재자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성명에서 카스트로에 대해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평가를 유보한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 당선자는 “야만적 독재자”라고 비판한 이유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카스트로가 57년간 진행한 혁명은 쿠바인들의 의료혜택을 높이고 문맹률을 낮췄지만, 동시에 대규모 숙청·탄압과 함께 쿠바 경제를 밑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평했다.
워싱턴=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쿠바선 애도, 망명인들 환호
火葬 뒤 30일부터 전국 순회
내달 4일 산티아고 묘지 안장
28일 장례 일정이 개시되는 ‘쿠바 혁명의 아버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 타계에 대해 쿠바인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쿠바에서는 애도 분위기가 강하지만, 정치적 억압을 피해 망명한 쿠바계 미국인들은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또 카스트로 전 의장이 혁명가인지, 독재자인지를 놓고도 ‘극과 극’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7일 CNN 등에 따르면 쿠바 정부는 지난 25일 90세로 타계한 카스트로 장례 일정을 28일 오전 9시부터 예포 21발과 함께 개시한다.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 29일 정오까지 추모 공간이 마련되고, 같은 날 밤 대규모 추모 집회도 예정돼 있다. 이후 화장된 카스트로 유해는 30일부터 전국을 순회한 뒤 12월 4일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 안장된다. 산티아고 데 쿠바는 카스트로의 고향 비란에서 가까운 곳으로, 32세의 카스트로가 1959년 쿠바 혁명의 승리를 선언한 ‘혁명의 도시’다.
쿠바는 애도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고 dpa 통신은 전했다. 아바나의 식당은 문을 닫았고, 번화가인 23번가에서도 음악 소리가 사라졌다. 세계적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쿠바 공연도 취소됐다. AFP통신은 “야구경기 관람도 금지됐고, 일부는 카스트로가 공부한 아바나 대학 앞에서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쿠바계가 대거 거주하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리틀 아바나’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들은 미국·쿠바 국기를 함께 들고나와 흔들거나, 일부는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만큼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었다. 지지자들에게는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에도 불구, 1956년부터 게릴라전을 통해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을 타도하는 데 성공한 ‘혁명의 화신’이었다면, 반대에서는 57년간 철권통치를 휘둘러온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스트로는 1차 혁명 실패 뒤 투옥된 상태에서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는 명문을 남기고, 10명의 미국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 중남미·아프리카 좌파 혁명을 지원한 20세기 냉전시대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쿠바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 러시아·이란이 “20세기 식민 체제를 파괴하고, 강대국 식민주의에 맞선 독보적 인물”로 카스트로를 평가한 배경이다.
하지만 1962년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과 ‘맞짱’을 떴던 카스트로도 1990년대 냉전 해체 이후 쿠바의 경제적 쇠락을 막지는 못했다. 또 공산당 일당독재와 반대파에 대한 탄압 등은 독재자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성명에서 카스트로에 대해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평가를 유보한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 당선자는 “야만적 독재자”라고 비판한 이유다. 워싱턴포스트(WP)는 사설에서 “카스트로가 57년간 진행한 혁명은 쿠바인들의 의료혜택을 높이고 문맹률을 낮췄지만, 동시에 대규모 숙청·탄압과 함께 쿠바 경제를 밑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평했다.
워싱턴=신보영 특파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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