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시종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의 연속이다. ‘이게 나라냐’는 한탄을 넘어 ‘안 망한 게 다행’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국격을 유린한 이번 사건의 두 주인공인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 관계는 ‘정상’적인 방법으론 설명할 수 없다. 최 씨가 무당이니, 제정 러시아 말기 때 요승 라스푸틴 같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최면술을 쓰는 라스푸틴은 황제와 황후를 꼬드겨 러시아를 결딴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마찬가지다. 학력이 의심스러운 최 씨와 달리 안 전 수석은 사립명문대를 나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경제학자이자, 실력을 인정받은 대학교수였지만 박 대통령에게 한 번도 ‘노’라고 하지 않고 ‘마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안 전 수석이 순종적인 성격에다 자리 욕심이 강했다 하더라도 그는 학자로서 최소한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했다. 민간인이 대통령에게 ‘지시’하고, 이 같은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불법을 저지르는 데 앞장선 이번 사건의 해법을 찾고, 이 같은 국정농단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이들이 왜 도덕적, 윤리적, 양심적 가책을 느끼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부터 풀어야 한다. 모르쇠로 일관 중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검찰에 출두하면서 기자를 째려본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도 비정상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법정에 한 사람이 섰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봤냐”는 질문에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정신 상태를 진단한 6명의 정신과 의사들은 “그는 나보다 더 정상이며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었다”고 판정했다. 이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을 ‘최종 해결’한 홀로코스트의 총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었다. 아이히만은 600만 명을 학살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다며 보람을 느꼈다.
이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1906∼1975)는 아이히만을 보면서 사유의 불능성(不能性) 등에 대해 언급했다.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을 통해 내려온 최 씨의 지시를 깨알 글씨로 수첩에 적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수행했을 뿐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40여 년간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지켜준 최 씨 일가에 빠진 박 대통령은 ‘(이거) 최 선생님에게 컨펌(confirm·확인)한 것이냐’고 물을 정도로 최 씨에게 생각 없이 의지했다. 무소불위 권력의 맛에 취한 최 씨에게는 원래부터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귀를 열어 다른 얘기를 듣고 소통하려는 생각만 있었어도 이번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190만 명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퇴진을 외치고 있는데도 박 대통령이 진정성 있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거리에는 ‘배터리도 5%만 남으면 바꾼다’라는 손팻말을 든 국민이 많았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3주 연속 5%였던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지난주 4%로 떨어졌다.
yb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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