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러시아공장(HMMR) 조립 라인에서 푸른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들이 차체에 앞 유리창을 부착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현대자동차 러시아공장(HMMR) 조립 라인에서 푸른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들이 차체에 앞 유리창을 부착하고 있다.

- ① 수출부진 심화… 돌파구 찾아야

트럼프노믹스로 불안 가속화
고부가가치 제품 전면 내세워
중동 등 원전 수출국 공략 필요

CJ CGV ‘韓 극장문화’ 전파
삼성, 과감한 M&A 전략 펼쳐
현대·기아차, 中·인도에 초점
롯데·LG전자, 베트남에 집중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트럼프노믹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정책)’의 등장은 가뜩이나 선진·신흥 시장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어 온 한국 기업들을 더욱 혼미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노믹스에 따른 보호무역주의의 득세, 고립주의의 심화는 수출 여건 악화와 함께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교역 1위인 중국 시장조차 내수 중심 성장전략과 고부가가치 분야로의 산업구조 개편이란 구조적 암초를 만나 부침을 겪고 있던 상태에서 이중고에 봉착한 것이다. 그렇다고 대외의존적 구조가 절대적인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격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홀로 안주해 있을 수는 없다. 로컬과 글로벌 기업들이 사활을 건 승부수를 띄운 상황에서 국내 대표기업들의 고부가가치 제품을 전면에 내세운 신시장 진출 및 돌파 전략을 집중적으로 진단한다.

유지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 지난 1986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처음 진출한 후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매년 내는 납세액만 20억 위안(약 3382억 원)이 넘는다. 지금까지 20억 달러 이상 투자했고, 6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한 해 중국 시장 판매총액은 100억 위안(1조6914억 원)으로 추정된다.

곽복선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는 “유니레버가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것은 ‘중국의 기업’이 되겠다는 이념 아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기울였기 때문”이라며 “상하이에 연구센터를 두고 바이차이나에 충실해 원자재의 90% 이상을 중국에서 조달하는 등 연구·개발(R&D), 제조, 구매를 모두 중국에 뿌리를 뒀다”고 분석했다.

CJ푸드빌은 지난 2004년 미국에 뚜레쥬르 1호점을 열며 글로벌 시장 진출에 나섰다. 지금은 10개국에 4개 브랜드를 진출시켰고 3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숱한 도전과 시행착오를 겪었고 재도전의 과정을 반복했다.

같은 CJ그룹 계열사인 CJ CGV는 2006년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발을 디뎌 미국,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에서 ‘한국 극장문화 전파의 첨병’으로 자리매김했다.

CJ CGV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오감체험 특별관 4DX는 최근 캐나다까지 진출해 42개국에 300개 상영관, 3만8000개 좌석을 보유한 글로벌 대표 특별관으로 거듭났다”고 말했다.

3개사의 사례는 한층 시계(視界)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세계 경제의 혼돈과 수많은 기업이 명멸하며 각축하고 있는 세계 시장에서 어떤 자세로 응전해야 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블루오션보다 레드오션이 더 많아지는 현실에서 생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기업의 좌표와 지향점을 시사하는 셈이다.

1일 산업계,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기준 국내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는 66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감소했고, 신규투자법인 수 역시 792개로 2.7% 줄었다. 세계 경기의 불확실성으로 전통 제조업 투자국인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결과다. 지역별로도 아시아는 10.9%, 중남미는 49.5% 감소했다. 그나마 제조업 투자는 17억7000만 달러로 0.6% 증가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내년에 수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상대적 기저효과가 반영될 전망이어서 부진의 터널은 여전히 지속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환경에서도 생존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글로벌,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은 한층 두드러지고 있다. 자오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TV·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4개 가전 중 TV만이 소폭 성장했을 뿐 저성장 기조로 바뀌면서 포성 없는 전장으로 변한 중국 가전 시장에서 로컬 기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다양한 생존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 가전 대기업은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개척을 추진해 하이얼의 경우 미국 GE 가전 부문을 인수했고 메이디는 도시바 인수를 공개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 내의 외국 가전기업인 보쉬, 지멘스, 파나소닉은 각각 일관성 있는 프리미엄 전략을 추진하고 중국 사업에 더 많은 자체 결정권을 부여해 난관을 뚫고 있다고 했다. 필립스는 내수시장을 잘 아는 중국 협력기업에 브랜드 전권을 주어 사용권을 수익으로 챙기고 있다.

신흥국 기업들도 급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김민석·이태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신흥국 기업에서 배우는 신흥국 진출 전략’을 통해 “자국의 좁은 내수시장으로는 한계가 따르는 매출 확대와 경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신흥국 기업들도 해외로 향해 현지의 독특한 니즈를 발굴하고 전에 없던 수요를 선제적으로 만들어 성공사례를 창출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대기업들도 변화무쌍한 글로벌 투자 환경에 맞춰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틈새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삼성은 세계 1위인 미국의 자동차 전자장치·오디오 전문 업체인 하만, 인공지능업체인 비브랩스 인수에서 알 수 있듯 과감한 인수·합병(M&A) 전략으로 선회했다. 현대·기아차는 중남미, 중국, 인도, 러시아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으며 SK는 글로벌 파트너링 전략에 방점을 찍을 계획이다.

LG는 전자, 이노텍, 디스플레이, 화학 등 계열사를 신흥거점으로 부상한 베트남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신흥시장의 과실(果實)을 선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롯데는 성장잠재력이 높은 VRICI(베트남·러시아·인도·중국·인도네시아) 5개국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의 고삐를 죄는 한편,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북미 지역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포스코는 동남아 최대의 제조업 생산기지인 태국에 이미 18년 전에 진출, 생산·가공·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국토, 자원, 청장년층이 높은 인구비율 등의 측면에서 강점을 지녀 연간 경제성장률이 5%를 웃도는 아시아 신흥국의 성장세를 눈여겨보고 기업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점이 주목을 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기업들도 선진·신흥시장 위축, 보호무역주의 심화,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등의 온갖 대내외 악재를 딛고 신시장에서 새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응전 노력을 기울이는 게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파나소닉이 중국에 처음 진출한 외국 가전기업으로 30년 이상 내수사업을 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자오유 연구위원), “외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한국 기업은 현장경영의 탄력성이 부족하다”(곽복선 교수) 등의 지적은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글로벌 경제·산업 환경 변화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중국,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역점을 두되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중국의 산업구조 전환에 대처해야 한다”며 “내년의 경우 신시장으로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다는 점을 전제로 할 때 중동 등의 원전 수출국에서 더 긍정적인 성공사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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