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접촉사고·허위진단서 등
브로커·의사 등 줄줄이 연루
평범한 일반인도 유혹 빠져
‘모럴해저드 범죄’의 관행화
9월 시행된 특별법에 기대
“단호한 처벌 통해 근절을”
보험사기가 진화하고 있다. 보험사기 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관련 법이 강화되고 있지만, 보험사기 수법도 함께 지능화되고 있다. 보험사기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348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5억 원(12.1%) 증가했다. 이는 반기 기준으로는 가장 많은 적발금액이다. 이에 1인당 보험사기 적발금액 역시 2014년 상반기 705만 원에서 지난해 상반기 758만 원, 올해 상반기 869만 원으로 증가세를 나타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기는 조직화, 일반화, 지능화, 국제화되고 있다”며 “교묘한 수법으로 법망을 빠져나가는 조직적 범행이 증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평범한 일반인조차 죄의식 없이 허위로 보험금을 타내려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형’ 범죄가 관행처럼 굳어져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진화하는 보험사기, ‘모럴해저드’를 만나다 = 지난 10월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해외 여행자보험에 가입해 보험금 약 1억5000만 원을 챙긴 보험사기 브로커 옥모(여·26) 씨와 여행객 김모(26) 씨 등 3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필리핀에서 식중독, 뎅기열 등에 걸렸다는 허위 진단서를 끊어 보험금을 나눠 가진 혐의(사기·사문서위조행사)였다. 경찰에 따르면 필리핀 교민인 옥 씨 등은 “여행경비를 벌 수 있게 해주겠다”며 여행객들에게 접근했다. 허위 진단서는 사전에 매수한 현지 의사가 전담했다. 해외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진단서는 국내 보험사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1인당 치료비는 수백만 원에 달했고, 이들은 ‘범죄 성과’인 보험금을 보험 청구자 70%, 의사 20%, 브로커 10% 비율로 나눠 가졌다. 여행객들이 잠시 범죄에 가담해 챙긴 금액은 1인당 100만∼500만 원에 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평범한 일반인들이었지만 쉽게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죄의식 없이 범행에 가담했다”고 설명했다.
보험사기에 발을 들여놓는 평범한 일반인들은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 하는 낮은 죄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갈수록 조직화, 지능화된 보험사기단이 이들에게 제시하는 고액의 보험금은 강한 유혹이 된다.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다들 이렇게 한다’ ‘이 정도도 못 타 먹으면 바보다’면서 일반인들을 보험사기로 끌어들이는 병원 등 보험 관련 종사자들의 모럴 해저드 역시 심각한 문제다.
금감원은 지난 4월 브로커와 공모해 피보험자 37명에게 보험금을 타게 해주겠다고 접근한 뒤 허위장해진단서로 17억 원 상당의 장해보험금을 타낸 의사 A 씨 등을 검찰에 송치했다. A 씨의 유혹에 넘어간 피보험자들은 고액의 보험금을 타려고 한 달 사이 3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A 씨와 브로커들은 이들이 수령한 장해 진단 보험금의 약 30%를 ‘소개 수수료’로 받아 나눠 가졌다.
자동차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금감원이 지난 1월 검찰에 송치한 한 특장업체 대표 B 씨는 먼저 “수리비 부담 없이 수리해주겠다”고 사고 차량을 유인했다. 그 뒤 차주와 공모해 교환하지도 않은 부품을 교환한 것처럼 꾸미거나 재고 또는 중고부품을 사용하고 신품으로 교환한 것처럼 보험사에 수리비를 과다 청구하는 방법으로 1억1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이 회사 관리이사인 C 씨는 자신의 명의로 서류상 회사인 ‘페이퍼 컴퍼니’까지 만들었다. 이 페이퍼 컴퍼니가 허위로 부품 납입 청구서를 발급해주면 특장업체가 이 서류로 보험회사에 수리비를 청구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보험사기의 일반화는 모방범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는 전파성이 강하고 모방범죄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장기간의 경기 침체를 틈타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10대 청소년 보험사기가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4월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다 일방통행로 역주행 차량이나 후진하는 차량에 부딪히는 방법으로 고의로 사고를 내고 9000만 원 상당의 보험금을 타낸 고교생 10명을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주로 배달업을 하며 가까워졌으며, 보험 사기 경력이 있는 한 오토바이 수리업체로부터 “사고 난 오토바이를 맡기면 공짜로 수리도 해주고 합의금도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듣고 범죄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역주행 차량과 사고가 날 경우 역주행 차량이 가해자로 처벌된다는 점을 악용해 일부러 사고를 내거나 사고를 내도록 유도했다”며 “상대방이 음주운전을 했거나 그냥 갈 경우 뺑소니 신고를 해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합의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이처럼 보험사기에 연루된 청소년은 2009년 508명에서 2013년 1264명으로 늘어났다.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에 거는 기대 = 보험업계는 지난 9월 30일부터 시행된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이 보험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보험사기는 일반 사기죄와 똑같이 10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했지만, 특별법은 보험사기죄를 10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다스린다. 보험사기에 대한 처벌 수준을 높이면, ‘보험금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최대한 많이 받는 것이 미덕’이라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아직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KB손해보험 등 3개 대형 손해보험사에 따르면 특별법 시행 직후인 10월 보험사기 신규 조사 착수 건수는 2840건이다. 법 시행 직전 2781건보다 2.12%(59건) 소폭 증가했다. 또 11월 보험사기 신규 조사 착수 건수는 2797건으로 법 시행 전보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보험사기 증가는 보험료 증가로 이어지고 이는 곧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의 피해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단호한 처벌을 통해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금융당국과 업계도 보험금 책정 기준을 좀 더 세분화하고 다양화해 합리적인 보험금 산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정아 기자 jayo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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