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의 별명은 ‘최틀러’다. 2003년 국제금융국장 시절 급격한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막대한 실탄을 쏟아부으며 환율 방어에 나서자 손해를 본 뉴욕 외환 딜러들이 “히틀러 같다”고 말한 게 그의 별칭이 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당시 원화 절상을 방치했다면 오늘날의 자동차, 전자산업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책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에서도 “환율정책의 시행과 효과가 2~3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하다 보니 시행 시점에는 많은 비난이 쏟아졌고 개인적으로도 부침이 있었다. 하지만 2003년 파생시장 개입을 통해 확보한 달러매수권은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고 회고했다. 개인적 부침은 2003년 개입에 따른 후유증으로 환율정책 라인에서 물러난 것을 말한다.
그는 그래도 “외환 투기세력과의 대결에서 국가 경제의 산업경쟁력을 지켜낸 것이 관료 생활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고 했다. 그의 강한 소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이명박정부 시절인 2011년 2월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발탁됐지만 그해 여름 대규모 정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해 9월 물러난 바 있다. 그는 “이상고온 현상으로 발전 효율이 떨어져 원자력발전소에 비상벨이 울리는 상황이 발생했고, 즉시 순환 단전으로 대형사고를 막았다”며 “하지만 레임덕이 시작되는 시기여서 과도한 비판을 받았고, 여러 부처가 관련돼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 자체가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홀로 정치적 책임을 지기로 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불가피하게 물러났지만 ‘낙마’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았음이 묻어난다.
그는 1978년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발을 디디기 전 대학 3학년 때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로 근무했던 경험이 있다. “선배 한 명이 재무 관료가 되면 더 보람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조언해 시험을 봤다”는 그는 30여 년 공직 생활을 마친 뒤 지난 6월 공인회계사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첫 직장’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출마 배경에 대해 “회계제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해야 우리 경제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회계는 경제를 구성하는 조그만 벽돌인데, 벽돌이 엉터리면 집이 무너진다. 회계는 거시경제 자원 배분을 위한 의사 결정의 가장 중요한 인프라다.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이 국제적으로 거의 꼴등이다. 회계 감사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
김충남 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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