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관료 출신인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무실에서 ‘어정쩡한 중립은 파멸에 이른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하고 있다. 최 회장은 세계은행 이사와 주필리핀 대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경제관료 출신인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이 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무실에서 ‘어정쩡한 중립은 파멸에 이른다’는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하며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전략적 모호성을 비판하고 있다. 최 회장은 세계은행 이사와 주필리핀 대사, 기획재정부 제1차관, 지식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 (前 지식경제부 장관)

유일호든, 임종룡이든 확실히
특단의 소비 진작책 내놓아야

트럼프 ‘공정무역’ 내세울 것
반덤핑관세·상계관세 등 보복
환율 조작에 엄청난 제재 예상

FTA관련 몇가지 요구할 수도
금리 정책는 Fed가 독자 판단

日 재무장, 美의 ‘中 견제 수단’
한국 ‘전략적 모호성’ 자살행위


강력한 ‘환율 주권론자’인 최중경(60·전 지식경제부 장관)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6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4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시절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난 이후 10여 년 만이었다. 이명박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지경부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 연관성이 많지 않아 보이는 외교·안보 서적을 낸 게 인터뷰 동기였다. 지난 9월에 출간된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하지만 나라의 위기는 외교·안보만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귀결되면서 국정 마비 상황에서의 경제 리더십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최 회장은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현 유일호(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경제부총리 내정자, 금융위원장) 어정쩡한 동거 체제를 누가 되든 시급하게 정리해 경제 리더십을 빨리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리더십은 대외 부문보다는 국내 경기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특단의 소비 진작책과 가계부채 관리 노력을 주문했다.

―경제 리더십 문제 어떻게 해야 하나.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에서 최대한 빨리 임종룡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서를 보내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 상황 때문에 힘들다면 임종룡 카드를 깨끗하게 접고 유일호 부총리가 상황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유일호 체제로 가도 경제 운용에 아무 문제가 없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받쳐주면 된다.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최대한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탄핵 이후 위기 상황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나라 외환 부문은 상당히 건전하고 탄탄한 편이다. 순채권 국가이고, 단기외채 비율도 낮고, 경상수지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외환 부문의 벽은 높게 쌓여 있다. 하지만 제조업 가동률이 70%로 매우 낮은 수준이고, 소비 수준도 급격히 위축된 상황이다. 국내 불확실성 심화로 소비가 얼어붙지 않도록 특단의 소비 진작책을 내놔야 한다. 특별소비세를 과감하게 한시적으로 내리고, 소비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보완한다든지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또 가계부채가 늘어나면 소비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가계부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계부채가 부실화하면 담보가격이 떨어져 스칸디나비아형 외환위기라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스칸디나비아형 외환위기란 무엇인가.

“외환위기 경로가 두 가지 있다. 우리나라도 겪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는 대외부채가 누적돼 경상수지 적자가 쌓이고 대외 단기부채가 쌓여 발생한 것이다. 1980년대 있었던 스칸디나비아 외환위기는 국내 부동산 침체로 은행의 대출담보가 나빠져 부실채권이 쌓이고 금융기관의 자본 적합성이 확 떨어지니까 외국계 은행들이 ‘크레디트 라인(credit line)’을 끊어버린 것이다. 국내 자산시장에 문제가 생겨 은행이 부실화한 것이다. 특히 부동산과 가계부채가 연결된 부분에서 일어난다. 외환보유액이 많고 적은 것과는 관계가 없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내부 자산시장 문제로 생기는 외환위기가 있을 수 있다. 부총리가 그런 부분을 잘 관리해야 한다.”

―미국 대선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등 도널드 트럼프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트럼프 당선자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다. 개인 색깔을 드러내겠지만 무작정 제한 없이 낼 수는 없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지배하고 있고, 공화당의 어젠다가 있다. 그것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경제 문제는 두 가지다. 보호무역을 강하게 할 것이냐, 또 하나 금리 인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금리 정책에 관한 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본다. 무역정책은 보호무역보다는 ‘공정무역’에 방점을 찍을 거다. 공화당이 원래 자유무역과 자유기업제도를 신봉한다. 공화당 대통령이 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가 상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매기고, 보조금을 준 상품에 대해서는 상계관세, 환율조작에 대해서는 베넷―해치―카퍼(BHC) 수정 법안을 통해 굉장한 제재를 가할 것이다. 이런 게 공정무역인데, 자유무역에 기초하면서 보호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불공정한 요소가 있는지 전면적으로 리뷰해 보자고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몇 가지를 요구할 수도 있다.”

최 회장의 책 얘기로 돌아가보자. 인터뷰 전 어렵고 복잡한 외교·안보 현안을 막힘 없이 물 흐르듯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책을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한스러운 우리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동서양의 역사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들며 논거로 삼아 읽는 맛을 더했다. ‘우국(憂國)’이 바로 이런 거구나라고 느끼게 하는 그 절절함이 진하게 밴 책이라는 게 솔직한 감상평이다.

특히 일본의 아베노믹스(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경제 정책)가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을 통해 동북아 안보 구도를 재구성하려는 미국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 북핵 문제를 놓고 ‘혈맹’이라고 하는 중국과 북한이 냉랭한 관계인 것은 북핵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동시에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 등은 혜안이 번득이는 대목이었다.

2012년 8월부터 3년간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방문연구위원으로 지내면서 읽고 보고 생각한 바를 정리했다는 이 책의 집필 배경을 들어보자. “우리가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나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호감도나 약점 이런 것만 가지고 봤는데,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가 미국 대선의 기본 베이스다. 우리는 미국을 너무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저 사람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어떤 정책을 하고 있느냐, 특히 동북아시아 안보와 관련해 어떤 정책을 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이해해야 이에 대응해 정확한 정책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굴기(굴起), 일본의 재무장,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등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 질서의 재편 속에서 우리나라 외교·안보 정책의 현주소는 어디이고, 어떤 점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도 중요하지만 안보·군사적 가치가 우선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기본 입장이다. 그는 “중국 문제나 통일 문제 등에서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대처를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의존)’ ‘전략적 모호성’ 같은 구호를 모두 낙제점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은 강대국이 절대 아니다. 몸을 낮추고 여기저기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입장임을 자각하는 데서 문제 해결의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힘도 부족한 자가 좋은 것은 다 갖겠다고 ‘박쥐’처럼 행동하면 결국 모두로부터 배척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조중(朝中)상호방위조약이 충돌하고 있는데 중국에 다가가면 되겠는가. 위치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건 자살행위다. 이는 절대 강자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약자가 전략적으로 모호하면 양쪽이 모두 총을 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어정쩡한 중립은 파멸에 이른다’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의 재무장 문제 역시 우리나라가 큰 실책을 했다는 게 그의 통찰이다. “일본군의 한반도 상륙 문제가 가시화하는 중에도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만 집중한 나머지 안보 정책의 균형 감각을 상실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가 일본과 대화를 거부하고 미국과 서먹서먹하게 지내는 사이 일본의 재무장이라는 중차대한 이슈가 미·일 양국 간에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말았다. 한국은 끼어들지도 못하는 상황을 자초한 것이다.” 그는 책에서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상륙은 우리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는 외교부와 국방부가 왠지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다. 아니, 분노의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다는 게 더 정확하고 솔직한 심정일지 모르겠다”고 썼다.

이 지점에서 아베노믹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선택은 인도의 핵무장을 공식화해주는 대신 미국 편에 서라는 것이다. 또 일본을 재무장시키고, ‘QUAD’(쿼드,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연합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것이다. 일본에 재무장하라고 하니까 역대 총리들은 다 싫다고 했는데 아베는 받아들였다. 재무장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내놓은 게 아베노믹스이다. 이를 위해 경쟁 관계인 한국과 중국의 산업은 찌그러뜨려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이 (아베노믹스를 통한 엔저(엔화 가치 하락)는 용인하면서도) 한국이 외환시장이 흔들릴 때 조금만 개입해도 난리를 피우는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동북아 안보 구도를 재구성하는 부산물이지 경제정책이 아니다.”

중국보다 미국을 우선시하는 그의 입장을 보면 대북 강경론자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정반대였다. 통일은 긴 호흡으로 점진적인 평화통일로 이뤄야 한다는 게 그의 기본 관점이다.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이나 전쟁은 파멸을 부를 뿐이며, 평화통일만이 경제적 관점에서도 가장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다. “어차피 통일을 하려면 파트너는 북한이다. 북한과 잘 지내야지 척을 져서 어떻게 통일이 되겠느냐. 평화통일 외에 어떤 것도 우리에게 큰 부담이다.” 최 회장은 그런 면에서 올 초 개성공단 폐쇄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전략적으로 너무 빠른, 아쉬운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잠정 폐쇄한 뒤 충분히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다.

인터뷰 = 김충남 차장 (경제산업부)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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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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