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쏟아진 한국사회… ‘책’으로 답하다

출판인 26명이 최대 5권 추천… ‘종의 기원’ 12표 1위


문화일보 북리뷰는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16년 올해의 국내 저작’ 10권을 선정했습니다. 세계의 고전이 우리의 고전이며, 지식에 국경이 없는 시대지만 결국 좋은 국내 필자들이 많이 나와 독자와 소통할 때 우리 책 시장이 넓고 단단해진다는 변함없는 생각에 기대 국내 저작만을 상대로 올해의 책을 선정했습니다. 출판인 26명에게 최대 5권까지 추천받은 결과 가장 많이 추천된 책은 12명이 추천한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었습니다.

미술사학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와 서점가에 자존감 열풍을 일으킨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 저널리스트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은 7명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물리학자 김상욱의 ‘과학공부’는 6명, 맨부커상으로 한국 소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소설가 한강의 신작 ‘흰’, 김탁환의 사회파 소설 ‘거짓말이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이민경의 페미니즘 가이드북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각각 4명이 추천했습니다.

이번 설문에서 출판인 26명이 추천한 책은 무려 71권이었습니다. 대부분 동의할 만한 굵직한 국내 저작이 많이 없었기 때문인 듯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책이 나왔고, 취향은 더욱 분화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올해 추천받은 책들 중 상당수가 우리를 둘러싼 사회문제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책이었습니다. 우리 책의 사회적 대응력, 문제 감지력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점에서 반갑습니다. 그래서 4명 이상이 추천한 9권의 책과 함께 ‘사회에 응대한 모든 책’을 10번째 올해의 책으로 정했습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 도움주신 분

강맑실 사계절 대표,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고세규 김영사 이사, 김기중 더숲 대표, 김수한 돌베개 주간, 김수진 푸른숲 부사장, 김인호 바다 대표,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박상준 민음북스 대표, 박윤우 부키 대표,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 송영석 해냄 대표, 염종선 창비 이사,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윤희영 현대문학 팀장, 조미현 현암사 대표,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은수 출판평론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주연선 은행나무 대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 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 본격문학·대중문학 경계를 부수다
종의 기원 /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는 첫 문장에서 시작해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짠 바람을 타고 피 냄새가 훅, 밀려왔다’로 끝나는 정유정의 신작. 올해 나온 한국 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작품으로 한강의 작품과 함께 올해 한국 소설을 견인한 주인공이다. ‘7년의 밤’ ‘28’ 등을 통해 인간 본성, 이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악의 본질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작가는 ‘종의 기원’에 이르러 우리 마음속 악이 어떻게 자라나 인간을 넘어서는 악으로 탄생하는지 풀어냈다. 소설은 초반에 담대하게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고 시작하지만 눈앞에서 사건이 펼쳐지는 듯한 생생한 묘사와 긴장감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무엇보다 ‘종의 기원’의 성공은 한국문학의 오랜 시대착오적 관습인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간 분류를 완전히 무너뜨리며 한국문학을 확장시켰다. 한국형 스릴러의 멋진 탄생이다.

★ 쫄깃한 긴장, 빠져나올 수 없는 몰입. 개성적이고 변별력 있는 정유정 스타일.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김수진 푸른숲 부사장)


◈ 바로 앞에서 설명하는 듯한 미술史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 양정무 / 사회평론


출판사가 오랫동안 기획, 준비해 내놓은 디지털 세대를 위한 미술사 책. ‘인문학의 꽃’으로 불리지만, 결코 쉽지 않은 서양 미술사를 바로 앞에서 설명하듯 구어체로 서술하고, 책 중간이나 뒤에 수록한 도판을 뒤적여야 했던 기존 미술사 책과 달리 한 페이지 안에 필요한 그림과 사진을 배치해 텍스트를 읽으면서 관련 이미지를 함께 볼 수 있게 했다. 실제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가 편집자를 상대로 질문을 받아가며 진행한 미술 강의 내용을 가다듬어 책으로 펴냈다. 서양 미술사라면 아직도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를 떠올리는 우리 독자에게 주어진 우리식 시선으로 읽어낸 미술사다. 1권 원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편, 2권 그리스 로마편에 이어 내년 1월 3권이 출간된다. 총 9권으로 기획됐다. 깊이를 놓치지 않는 예술·인문서의 대중적 진화이다.

★ 전문적인 소수의 독자만을 위한 미술 책이 아닌, 누구나 접근 가능한 겉핥기식 미술 책이 아닌, 그러기에 폭발적인 사랑을 받는 미술 책.(윤희영 현대문학 팀장)


◈ 때론 소설처럼, 때론 詩처럼 읽히는
흰 / 한강 / 난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하며 올 한 해를 ‘한강의 해’로 만든 작가의 신작 소설. 소설과 시의 경계를 오가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이지만 한강 작가에 대한 열렬한 관심 속에 6만 부 넘게 팔렸다. 수상작 ‘채식주의자’와 함께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힘이 빠진 한국 소설에 활력을 안겼다. 소설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자신의 언니의 죽음을 모티브로 삶 속에 흐르는 죽음의 잔상을 따라간다. 그 형식은 문,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도시, 손수건, 쌀과 밥, 아랫니 등 ‘흰’색과 관련된 65개 짧은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작가는 상당 분량의 소설을 줄이고 줄여 뚜렷한 서사를 감추고 거의 시의 경지에 이른 장르가 모호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소설로도 읽히고, 시로도 읽힌다. 삶 속에 존재하는 죽음, 하지만 결국 살아내야 할 삶을 말한다. 우리 독자에게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안겼다.

★ 감각적이고 독특한 그의 장편소설의 세계와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 작품. 파격적이지만 그 밑에 흐르는 깊은 감성은 더 세밀하다.(송영석 해냄 대표)


◈ 각자도생의 시대… 어떻게 날 사랑할까
자존감 수업 윤홍균 / 심플라이프


인기 블로거로 일반인들의 질문에 성의껏 답해 ‘친절한 윤선생’으로 불렸던 정신과 전문의의 첫 책. 삶의 중심인 자존감은 스스로 노력해 키울 수 있다며 구체적 방법을 가르쳐 주며 20만 부 이상 팔리는 깜짝 베스트셀러가 됐다. 전문지식, 필자의 솔직한 실패담, 여기에 자기계발서의 명확한 조언이라는 삼박자가 적절히 조화된 결과지만 동시에 자존감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누구도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각자도생의 시대, 그래도 나는 사랑받아야 할 존재라는 필사적인 열망과 의지를 아프게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 열풍보다 발전적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메시지였다면 ‘자존감 수업’은 그다음 단계,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까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 2016년,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이 상처받고, 주눅 들고, 비관적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김형보 어크로스 대표)


◈ 세상을 합리적으로 보는 방법… 바로 ‘과학’
김상욱의 과학공부 / 김상욱 / 동아시아


갈수록 열기를 더하는 교양 과학서 인기와 과학책의 확장성을 보여준 책이다. 물리학자인 저자는 천안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국정교과서, 경쟁사회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바라보며 분석했다. 사회현상과 물리학의 만남으로 과학책이면서 인문서이고, 인문서지만 결국 과학책이다. 저자는 과학이란 과학 공식들과 법칙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 즉 과학적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연구나 결과물인 기술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이 과학이며 그 속에 세상의 모든 문제를 풀 실마리가 있다는 것이다. 교양과학서 시장이 지난 몇 년간 중심이었던 우주, 진화 생물학에서 대중에겐 좀 더 어려운 물리학으로 확대됐음도 보여준다. 이 세상을 보다 근본적으로 살피려는 교양과학서 독자의 더 깊어진 욕구다.

★ 물리학자가 보여주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 인문학이면서 과학이고, 과학이면서 인문학인 제3의 문화를 구축.(한기호 한국 출판마케팅연구소장)


◈ ‘부고’ 형식으로 돌아본 35人의 삶
가만한 당신 / 최윤필 / 마음산책


현직 기자가 부고라는 형식을 통해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복원시킨 인물 인문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낯선 형식과 느린 호흡으로 풀어내는 밀도 있는 글로 인문서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 할례 금지 운동에 앞장선 에푸아 도케누, 흑인 인권 투쟁 현장을 누빈 존 마이클 도어, 장애 편견과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스텔라 영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35명의 완결된 삶이 담겼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 35명은 “차별과 억압과 무지와 위선에 맞서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가치와 권리를 쟁취하고자 우리 대신 우리보다 앞서 싸워준 이들”이라고 한다. 35명의 부고를 통해 알게 되는 인권, 페미니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라는 평가도 받았다.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기에 더 귀한 깊이 있는 글맛을 보여주는 저작이다.

★ 삶이 다한 순간, 누군가 부고를 써준다면 그건 이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느껴지는 책이다.(염현숙 문학동네 대표)


◈ TV 예능 프로그램 보는듯한 조선왕조실록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 설민석 / 세계사


일본의 과거사 왜곡, 국정교과서 등으로 어느 때보다 높아진 역사물, 역사 콘텐츠에 대한 관심에 스타 엔터테이너가 결합해 나온 역사 베스트셀러. 40만 부 이상 팔렸다. 조선왕 27명별로 주요 사건들을 풀어내고, 왕 이전에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인간적 면모를 살핀다. 읽다 보면 스타 강사 설민석 특유의 말투가 그대로 살아나 마치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 느껴지는 것이 장점이다. 당초 왕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해 누구나 쉽게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기획해 여러 명의 필자 후보군 중에서 뜻이 맞는 설민석을 섭외한 출판사 측도 이렇게까지 잘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책의 성공은 소설, 에세이 분야에서 이미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디어셀러가 이제 역사 같은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영역까지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 대중영합적이라 얕다거나 정통적이지 않다는 것은 기득권자나 선입견자들의 질투와 무시 때문이다. 여하튼 그의 강의는 훌륭하다.(김기중 더숲 대표)


◈ 세월호 다룬 첫 소설… ‘기억의 문학’
거짓말이다 / 김탁환 / 북스피어


세월호 문제를 다룬 책은 많았지만 세월호를 다룬 첫 장편소설이라는 점에서 ‘기록의 문학’ ‘기억의 문학’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 시대 이야기꾼인 소설가 김탁환이 처음 시도한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로 “소설은 내가 닥친 현실에 답을 줘야 한다”는 작가의 발언에 충실한 작품이다. 세월호 수색 작업에 참여했던 김관홍 민간잠수사를 모델로 삼은 일종의 르포르타주로 이들 잠수사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들여다보고, 부조리한 사회상을 고발하며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잠수사들이 위험한 선실 내에서 시신을 꽉 껴안고 나오는 장면이 이 작품의 눈물겨운 백미다. 수많은 거짓말 속에서도 차가운 바다 밑에서는 이런 진심과 최선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세월호가 2년여 만에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재등장한 올해, 더욱 돋보인 작품이다. 인세는 전부 세월호 진상 규명 활동에 기부됐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이 논픽션의 힘이라면, ‘거짓말’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이 픽션의 힘일 터이다. 올 가장 ‘깊은’ 힘을 보여준 이야기.(김수한 돌베개 주간)


◈ 페미니즘 실전 매뉴얼… 독립출판의 힘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이민경 지음 / 봄알람


강남역 살인사건, 예술계 성폭행 고발 등으로 이어진 올 한 해 페미니즘, 여성 혐오와 젠더 관련 책이 수십종 쏟아져 나온 가히 페미니즘 시대라 할 만했다. 이들 책 중 상당수는 베스트셀러까지는 아니지만 기본 부수 이상을 소화하며 국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는 일반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여성혐오나 성차별적인 주제가 나올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에 대해 알려주는 실전 매뉴얼이다. 올해 출간된 여러 여성이론서·연구서와 다르게 여성 개인의 의식 변화와 사회 변화의 속도가 다른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말해야 할지 고민스러운 일반 여성들을 위한 실용지침서라는 점이 돋보였다. 특히 크라우드펀딩으로 목표 금액인 200만 원의 20배인 4000만 원을 모아 책을 만든 독립출판의 성공적인 예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 첨단에 대한 예민한 응전을 보여주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한 책. 소셜 펀딩과 독립출판의 힘도 보여주었다.(출판평론가 장은수)


◈ 청년실업·정치·AI 등 다양한 이슈에 발빠른 대응
그外 사회에 응대한 모든 책들


정치, 경제 문제부터 청년실업, 여성 혐오, 역사 문제, 인공지능(AI) 관련 논의까지,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빠르게 다룬 책들이 광범위하게 추천받았다. 시대 문제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데다 사회 모순이 깊어지면서 이들 문제가 개인의 삶으로 치고 들어와 가하는 고통의 강도가 커졌기 때문인 듯하다. 여기에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정보 유통 속도가 빨라진 것도 출판의 빠른 대응에 주요한 원인으로 보인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 ‘천안함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등은 국민적 트라우마가 된 사건에 대한 수고로운 기록이며,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대리사회’는 청년 세대 보고서다. ‘강남역 10번 출구, 1004개의 포스트잇’ ‘나쁜 페미니스트’ ‘젠더 감정 정치’는 여성 문제를 다뤘다. ‘사법부’와 ‘한국현대 생활문화사’는 한국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풍자 일러스트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은 경쟁사회 도구가 되지 않으려는 개인의 몸부림을 보여줬다.

★ 사회를 향한 시선, 시대의 정서를 관통하는 비판과 풍자.(김인호 바다 대표)

관련기사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