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최순실 국정농단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삼성·현대차·SK·LG 총수는 청문위원 요구에 따라 전경련 탈퇴의 뜻을 밝혔다.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포스코 및 KT와 기업은행·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도 탈퇴 행렬에 동참할 태세다. 사건이 불거진 초기에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출연은 기업의 자발적 결정이었다고 주장하던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청문회에서는 말을 바꿨다. 안종범 전 수석의 요구에 따랐으며 자신은 그냥 종범(從犯)이라는 것이다.
청문위원들은 기업의 소소한 업무까지 들춰냈다. 매출액이 200조 원 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전결위임 규정에 따라 몇 백억 원 정도의 지출은 하부에 위임하고 중요한 경영 전략에 집중한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예외의 원칙’이라 부른다. TV로 생중계되는 현장에서 총수가 다룰 사항이 아닌 예상 밖의 질문을 던지고는 모른다고 대답하면 “아는 게 뭐냐”고 호통쳤다. 증인의 나이를 묻고는 답변 태도가 불량하다고 질책했다.
전경련은 1961년 8월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 정책을 구현하고 한국 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한다는 설립 취지로 출범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 영욕이 교차했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는 척박한 경제환경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 뒤 시대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회원사로부터 수금한 비자금을 정치권에 상납하고 반대급부를 챙기는 로비기관처럼 됐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 빅딜 주선에 나섰다 실패했다. 업황이 좋아 문제가 없던 반도체도 빅딜 대상에 끼워넣으려는 집권층 의도를 간파, 자율 조정을 내세워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기도록 몰고 갔다. 비대해진 현대전자는 적자투성이 애물단지가 됐고, 하이닉스로 개명한 뒤에도 적자 행진을 계속하다가 SK의 인수로 겨우 되살아났다.
허창수 회장이 2년 임기를 3차례나 연임한 것은 바통을 넘겨받을 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의 입지에 변화가 감지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위기감을 느낀 이승철 부회장이 전면에 나섰다. 2014년 3월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정부 부처의 문제점을 꼬집는 발언으로 박 대통령으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선의는 악마를 만났고 전경련 해체 또는 대폭 축소라는 비극적 결말로 끝날 위기다. 국정 역사교과서 분란에도 끼어들었다. 검인정 교과서 비판에 앞장선 학자를 각종 명목으로 표창하고 상금까지 안겼다. 역사학자들의 반감이 확산됐다. 기업의 공헌을 제대로 평가받을 의도였겠지만 ‘역사는 돈으로 바꿀 수 없다’는 교훈만 남겼다.
거액을 들여 준공한 회관 등 전경련 재산은 상당하다. 55년 넘는 세월 동안 쌓은 연구 네트워크도 풍부하다. 이를 효율적으로 결집해 최고 수준의 싱크탱크로 리모델링해야 한다. 경제 전략 수립뿐만 아니라, 기업 컨설팅도 활성화해야 한다. 개별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통합적으로 조율하는 기능도 맡아야 한다. 국가 경제의 성장을 이끌 연구 프로젝트와 개별 기업에 대한 맞춤형 컨설팅을 통해 회비 수입을 대체할 수입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탈(脫)정치 선언과 함께 국민을 받들고 봉사하는 전경련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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