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열차가 ‘헌재역’에 도착했다. 기관사는 민심, 보조는 정치권이다. 보조 기관사들이 그 기관차를 몰고 곧장 ‘대선역’을 향해 달리겠다고 난리다. 운전대 선점을 위한 수 싸움도 치열하다. 한 보조는 정식 기관사로 낙점된 양 “빨리 출발하자”며 닦달이다.
이제 민심을 등친 채 ‘대심(大心)’을 쫓는 잠룡들의 마각(馬脚)이 드러날 차례다. 이들에게 꼭 들려줄 말이 있다. “이번에 꽃가마를 타면 임기 내내 혹독한 ‘경제 가시밭길’을 걷는 불운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당선 직후 실체를 접하는 순간 “이게 뭐야” 하며 경악할 수도 있다. 사상 최악의 ‘경제대통령’ 오명을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그 단초는 차고도 넘친다. 께름한 일본 예측기관의 경제 전망은 차치하자. 국내 최고 국책연구소의 보고서만으로도 참담한 현실은 능히 짐작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4%로 하향했다. 정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2.0%로 급락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책기관 특유의 ‘보수적 레토릭’을 감안할 때 1%대로 추락할 공산이 크다는 의미다. 탄핵과 조기 대선에 개헌 변수까지 몰려 있는 내년은 정치 불확실성이 역대 최대일 게 자명하다. 말이 1%대 성장이지 현실화하면 국민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통상적 분석만 반추해도 얼추 실감이 난다.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취업자는 0.3% 감소한다. 1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허공에 뜬다는 얘기다. 월 평균 가계소득도 매달 18만 원 깎인다.
문제는 저성장이 언제 종료될지 기약이 없다는 점이다. 전가의 보도인 재정·통화정책도 별무효과인 고착화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 주범은 8년 전 촉발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다. 그 여파로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 체제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총수요 부족으로 터진 1929년 세계 대공황 때 해법은 단순했다. 재정을 쏟아부어 수요만 창출하면 됐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다르다.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40년간 누적돼온 부채가 근인(根因)이기 때문이다. 개인·기업·정부가 죽어라 돈을 벌어 빚을 갚는 방법 외엔 묘수가 없다. 글로벌 경제 회복이 더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 ‘이즘’을 모색하는 혼돈의 와중에 등장한 이가 ‘이단아(異端兒)’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다. 그는 불확실성에 질린 세계 경제에 괴물 같은 존재다. 경제철학은 케인스주의, 레이거노믹스, 유럽 중상주의를 버무린 잡탕이다. 오죽하면 ‘불확실성 덩어리(Mr.Big Uncertainty)’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폭풍우가 불어닥치기 직전 먹구름이 몰려올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집을 지키며 지붕과 창틀을 보강하는 게 정상이다. 집 안에만 박혀 있으니 체력 단련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폭풍우를 맞으며 밖으로 싸다닐 생각만 한다. 집에 와선 배 터지게 음식을 먹는다. 그러니 집은 붕괴 직전, 가족은 병사 직전이다. 한국 경제가 바로 그 꼴이다. 경제를 단번에 삼킬 1300조 원의 가계부채와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가채무(644조9000억 원)가 단적인 증거다. 잠재 성장률을 높일 기업 구조조정도, 신성장동력 발굴도 올스톱이다. 이대로 가다간 경제가 거덜 나는 건 시간문제다. 15일 예정된 미 금리 인상은 그 신호탄일 수 있다.
탄핵 정국 이후 경제에 귀 닫던 대선 주자들이 ‘민생 우선’을 입에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또한 대선용 머리 굴리기에 불과할 뿐이다. 혹 “경제가 망하기야 하겠어” 하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잠룡이 있다면 이 점만은 명심하라. 7차례에 걸쳐 연 700만여 명이 참여한 촛불에 불을 댕긴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지만 그 불씨는 경제 실정이다. 차기정권에서도 청년 실업, 양극화 등이 개선되지 않으면 촛불은 ‘광장의 일상’이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을 향했던 촛불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국민만 바라보는 지도자라면 이제 경제를 챙겨야 한다. 당장 사령탑을 명확히 세우는 데 합력해야 한다. 경제살리기 법안 통과에도 앞장서야 한다. ‘구국 전사’인 기업과 관료의 사기를 추스르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고복격양(鼓腹擊壤·배 두드리고 발 구르며 흥겨워한다)’. 백성의 등을 따습게 하고 배부르게 하는 게 최고의 정치라는 의미의 고사성어다. 그렇게 할 자신이 없는 잠룡은 지금이라도 출사표를 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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