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4일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의 한 감나무밭에서, 1박2일 마을 체험을 하러 온 광주 송정농협 조합원들이 단감 수확을 시작하기 전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나주=곽성호 기자 tray92@
지난 10월 24일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의 한 감나무밭에서, 1박2일 마을 체험을 하러 온 광주 송정농협 조합원들이 단감 수확을 시작하기 전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나주=곽성호 기자 tray92@

‘또 하나의 문화마을’ 지정된 전남 나주 풍산리 도래마을

전통 한옥마을로 이름난 전남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도래마을이 농협중앙회와 문화융성위원회 지원 아래 ‘또 하나의 문화마을’로 거듭난다. 15세기 중엽에 형성된 이 마을의 오랜 역사에다 예술적 멋과 흥이 더해지면 어떤 형태로 업그레이드될지 주목된다. ‘또 하나의 문화마을’ 대상지로 선정된 것은 강원 영월군 포도마을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10월 24일 찾은 도래마을은 식산, 감태봉, 주산봉 등 세 봉우리에 둘러싸여 누가 봐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지형이었다. 애초 뒷산에서 내려온 세 물줄기를 따라 마을이 세 갈래로 ‘내 천(川)’자 형국을 이루고 있다 하여 도천(道川)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 ‘천(川)’의 우리말이 ‘내’여서 이후 ‘도내’가 되었다가 발음하기 쉬운 ‘도래’로 바뀌었다고 홍기축(68) 이장은 설명했다.

주택 대부분을 차지하는 100여 채의 한옥들은 마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내밀하게 보여준다. 특히 풍산홍씨 집안의 홍기응 가옥(중요민속문화재 151호), 홍기헌 가옥(중요민속문화재 165호), 홍기창 가옥(전남민속문화재 9호) 등은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1936년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이 2006년 시민 모금으로 매입해 관리하고 있는 ‘도래마을 옛집’도 이 마을에 있다.

마을의 90가구(180명) 중 40가구가 비닐하우스에서 취나물을 재배해 주요 소득원으로 삼고 있다. 이날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 양벽정에서 1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문화이장 위촉식이 열리자 주민들은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양벽정은 1587년 인근 지역에 지어진 것을 1948년 이건해온 유서 깊은 정자로, 그 앞에 아담한 연못도 조성돼 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홍정석(82) 씨는 “주민들의 마음이 따뜻하고 주변 환경도 깨끗하지만, 우리 마을이 문화적으로 탈바꿈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다”고 했다. 지금은 이 마을을 떠나 광주에서 산다는 향우 홍모(62) 씨는 “마을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매년 합동세배(음력 1월 2일), 도래의 날 행사(4월 마지막 주 토요일), 전 주민 마을 청소(음력 7월 15일) 등 주민 화합을 위한 3대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소개한 뒤 “다만 주민의 80∼90%가 고령의 노인들이어서 선조들의 유산을 관리할 인력이 없는 형편인데, 문화마을로 지정되면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 문화이장으로는 소영식(41) 일상문화연구소 소장과 김범수(32) 어쿠스틱 앙상블 국악공연단 ‘재비’ 대표 등 2명이 위촉됐다. 위촉식에서 표재순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또 하나의 문화마을’은 농촌 마을의 특색에 맞춘 문화프로그램으로 마을의 문화적 발전 모델을 제시하고 마을 농산물의 부가가치와 농가 소득 증대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전국에서도 이름난 아름다운 한옥마을에서 두 분의 문화이장이 손꼽히는 문화마을로 만들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표 위원장은 “믿어도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으로 두 문화이장의 “예”라는 답변과 주민들의 박수를 유도했다.

위촉패 수여는 국회 예산 활동으로 상경한 강인규 나주시장 대신에 이기춘 나주부시장이 했고, 꽃다발 증정은 주민을 대표해 이장 홍씨가 했다. 위촉패를 받아든 소 소장은 “이렇게 아늑하고 유서가 깊고 오래된 풍경을 가진 마을이 있을 줄 미처 몰랐다”며 “몸은 마을에 없지만 마음은 늘 마을의 이장이라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김 대표가 이끄는 6인조 국악공연단 ‘재비’의 공연이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재비’는 악기 연주, 춤 등을 공연하는 전문 예능인을 지칭하는 우리말이다. 김 대표는 서도 민요 ‘금다래 꿍’을 재창작한 곡을 대금으로,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소금으로 각각 연주해 갈채를 받았다. 최윤선 씨가 민요 ‘배 띄워라’ ‘진도아리랑’ 등을 부를 때 주민들과 체험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흥겨워했다. 보컬 오단해 씨는 ‘사철가’로 목을 푼 뒤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과 ‘장타령’ 중 각설이가 등장하는 대목을 부르며 중간중간에 걸쭉한 입담을 과시했다.

문화이장 위촉식에는 1박2일 체험을 위해 이 마을을 방문한 광주 송정농협 조합원 40여 명도 함께 참가했다. 이들은 위촉식에 앞서 이장 홍 씨의 밭에서 탐스럽게 익은 단감을 수확하는 체험을 했다. 이어 나주시 전래놀이문화연구회가 주관한 사방치기, 실뜨기, 수박치기 등 전래놀이 프로그램에도 참가했다. 실을 감은 손가락을 몇 차례 움직여 그물 등 갖가지 모양을 만드는 ‘실뜨기’를 하면서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난 듯 모두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사방치기를 체험한 장애님(여·63) 씨는 “소녀시절 고향(광주 광산구 송정동)에서 자주 했던 사방치기를 50여 년 만에 다시 해봤지만 예상외로 잘 된다”면서 “하는 방법을 안 잊은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위촉식을 마친 문화융성위원회 및 농협 관계자들은 마을 곳곳을 꼼꼼히 둘러봤다. 이장 홍 씨는 홍기창 가옥으로 안내하면서 “경복궁을 수리했던 목수가 1918년 궁궐 형태로 지은 한옥”이라며 “나주 불회사 인근 산에서 벤 나무를 영광으로 가지고 가 1년 동안 바닷물에 담갔다가 말려 집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이 한옥에서는 TV문학관 ‘풍금이 있던 자리’ 등 드라마·영화 3편이 촬영됐다고 한다.

마을에는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30분가량 시간을 조절해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있다. 한옥 숙박업소가 ‘산에는 꽃이 피네’ ‘도래미 하우스’ 등 2곳, 민박 한옥이 3곳 있다. 농림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등도 이 마을에서 묵고 갔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참가자들이 양벽정에서 삼겹살 구이, 취나물 등으로 저녁 식사를 한 뒤 정자 앞 연못에서 문화마을 지정 축하 글 등을 적은 유등을 띄우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나주 = 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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