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송(宋)나라 때의 문인 구양수(歐陽脩)는 글을 잘 짓는 비결로 ‘다문다독다상량(多聞多讀多商量)’을 강조했다.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듣고 많이 읽으며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마도 이런 ‘말씀’을 몸소 실천한 인물 중에 가장 부지런한 이가 바로 김병익(78)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같다. 김 고문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은퇴 이후 평균 열흘에 2권꼴로 책을 읽었단다. 방대한 독서를 바탕으로 누구보다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펴내 왔다.
이번 책에도 그의 ‘다독’ 습관이 잘 드러나 있다. 2013년 6월부터 최근까지 한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 모음집이다. 한 편을 구성하는 데 인용한 ‘팩트’가 수십 가지가 넘는다. 마치 ‘팩트로 칼럼의 성(城)을 쌓은 듯’하다. 총 26편을 쓰기 위해 읽은 책은 64권에 달한다. 하나같이 묵직한 책들이다. 석학이나 전문가의 전망 내지는 분석을 담은 것들이고, 장르도 다양하다. 고은의 ‘바람의 사상’에서 손세일의 ‘이승만과 김구’, 벤 길리랜드의 ‘우주 탄생의 비밀’부터 헬렌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 그리고 마무리’까지….
김 고문은 “잡히는 대로의 책 읽기를 버릇 삼아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쓰고 싶은 대로 써왔다”면서 “글꼴이 자유롭지만 방만하며, 넓지만 얕고, 나직하지만 수선스러운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자평했다.
26편 중 서설 ‘디지털 기기를 익히며’는 2013년에 썼으나 발표하지 않은 글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김 고문이 디지털 기기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고백한 내용이다.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품성에 어떤 조화를 일으킬 것인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고문은 “21세기 디지털 혁명에 엄격한 기술 다이어트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세계의 운명은 맬서스의 비관론보다 더 심각한 결과로 진행될지도 모른다. 나는 엉뚱하게도 결코 내가 감당 못 할 디지털 문명의 맬서스적 딜레마에 부닥친 듯하다”고 말했다.
2015년 2월 5일에 기고한 ‘만년의 양식을 찾아서’는 인간 생명과 존엄사에 관한 것이다. 새 생명이 피어나던 봄, 김 고문은 문득 죽음과 자살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니어링의 책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삶에 주목했다. 그는 “우리 사회와 법, 의료계와 삶의 정서도 존엄사나 ‘생전유언’으로, 자유로운 인간의 최종 권리가 보장되기를 기원한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