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아름다운 단어다. 하지만 지금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려 불편한 단어가 되고 말았다. 대가와 뇌물 운운하며 수사 선상에 오르내린다. 세밑 분위기에 기부를 독려하고 있는 모금단체들의 속앓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내년 1월 31일까지 모금 목표액이 3588억 원인데, 15일 현재 581억 원을 모아 사랑의 온도가 16.2도에 그치고 있다. 예년 같은 시기보다 현저하게 낮다고 한다. 경기 침체 탓도 있지만 정국 혼란에 국민 관심이 줄고, 무엇을 해도 속내를 의심받는 분위기 탓에 대기업들의 기부가 주춤했기 때문이다.
기부는 공동체 유지의 근간이 된다. 부족한 사람들과 나누는 일,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일, 아프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일, 거기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 준다. 국민경제 관점에서도 기부는 중요한 경제적 행위다. 경제학에서는 개인이나 기업이 아무 보상 없이 다른 경제 주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외부효과(externalities)라고 한다. 환경오염, 교통혼잡 등은 비용(cost)을 발생시키는 부정적 외부효과다. 이를 근거로 법정 부담금이 부과된다. 반면에 사회 전체에 이로운 편익(benefit)을 가져오는 긍정적 외부효과도 있다. 기술 파급력을 갖는 사회적 지식 창출이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기부도 그런 측면을 갖고 있다.
우선, 기부금은 공적 사회안전망을 보강하는 ‘민간 복지 재정’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만 해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 가정 지원 사업, 중증 질환을 앓아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으나 요건이 부합하지 않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정 등에 대부분의 기부금을 쓴다. 2011년 3692억 원, 2012년 4159억 원, 2013년 4546억 원, 2014년 4714억 원(세월호 특별성금 제외), 2015년 5227억 원 등 최근 5년간 2조2338억 원이 모여 소외 계층 지원에 쓰였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2014년 국세청에 들어온 기부금 신고총액은 12조 원이다. 내년 복지부 예산 57조6628억 원의 20%가 넘는다.
기부에 대한 국민 인식을 바꾼 것도 경제적 사건이었다. 기부는 ‘돈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란 생각이 많았는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때 진행된 ‘전 국민 금 모으기 운동’으로 기부 문화가 뿌리내렸다는 분석이 많다. 당시 나랏빚을 갚으려 351만 명이 227t의 금을 모았다. 약 21억3000만 달러어치였다. 외채 304억 달러를 갚기에는 많이 모자랐지만 십시일반(十匙一飯)의 힘이, 국민적인 기부 의지가 경제 재건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2000년에는 처음으로 개인 기부금 비중이 법인 기부금을 넘어서기도 했다.
기부는 사회적 투자이기도 하다. 기부재단들이 연구·개발(R&D)과 인재양성뿐만 아니라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고, 유망 벤처기업을 돕는 소셜벤처캐피털도 여럿이다. 이들은 기부금 사용의 효율성을 따지기는 하지만, 정부 투자영역의 빈틈을 메워주고 있다.
이런 사정으로 대부분의 국가가 기부 활성화 제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2007년 기부금품의 모집절차, 사용방법을 규정해 성숙한 기부문화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현재의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기부를 하거나 받는 경우 모두 세제 지원도 하고 있다. 법인과 개인사업자는 각각 한도 내에서 기부금을 손금(損金)이나 필요경비로 인정해 준다. 과세표준(세금 물리는 기준금액)에서 제외해 그만큼 세금을 덜 내게 하는 것이다. 개인 기부자에게도 소득금액과 기부액에 따라 세액공제율을 적용해 세금을 깎아준다.
선행의 상징어인 기부가 폄훼(貶毁)되는 분위기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 기업들의 기부나 사회공헌 활동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풍조가 만연하면 400만 소외계층이 피해를 보게 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픈 도전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게 된다. 그건 국민 경제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기부하는 기업·기업인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살아나야 한다. 기업으로 일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박사나, 사후 자기 재산의 99% 기부 의사를 밝힌 워런 버핏 같은 기부의 선각자가 나오는 것도 그런 문화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가장 착한 단어 기부가 서글픈 처지가 된 이 겨울, 그래도 기부는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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