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1일은 내가 인턴 승무원 생활을 끝내고 정식 승무원이 된 날이다. 지금은 입사하자마자 국제선에 바로 배속돼 2년의 인턴 기간을 갖지만 당시만 해도 6개월의 국내선 수습 기간을 마쳐야만 국제선 승무원이 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시골 아가씨가 설레는 마음으로 수료증을 받던 그날, 진짜 승무원으로 다시 태어나는 우리에게 교육원장님은 다음과 같은 당부를 했다.

“승무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분의 느닷없는 질문에 우리는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지만, 자질이라는 게 어디 한 가지로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어떤 의중으로 질문을 던진 것인지 알 수 없었기에 우리는 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다. 안전의식, 밝은 미소, 친절, 튼튼한 체력, 서비스 마인드, 책임감…. 머릿속으로 수많은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어느 것 하나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이다. 오랜 비행 경험을 가진 그분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바로 ‘눈치’입니다. 이제 비행을 시작하면 여러분은 다양한 국적과 나이, 성별의 승객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모두 다른 승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분은 오감을 넘어선 육감, 즉 여섯 번째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눈치’는 바로 그 여섯 번째 감각의 기본입니다. 비행에서는 승객만 만나는 것이 아니지요. 여러분은 선임 선배부터 나이는 어리지만 근무경력은 더 많은 선배, 때로는 무서운 선배를 만나기도 할 겁니다. 다양한 스타일의 동료들과 함께 일할 때 ‘눈치’는 여러분을 사랑받는 승무원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던 당시에는 ‘아, 그런가 보다’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는데, 비행경력 17년 차가 되고 나니 ‘정말 그렇구나’ 하며 동감하게 된다. 여우 같은 마누라와는 살아도 곰 같은 마누라와는 살지 못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눈치’ 빠른 동료와 함께하는 비행은 참 즐겁다. 지금 필요한 것을 귀신처럼 알아내서 척척 해결하는 그녀를 만나면 믿음직스럽고 든든하다. 그녀가 담당했던 구역의 승객들은 내릴 때 환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세운다. “원더풀 플라이트!”

고객 만족을 넘어 고객 감동의 서비스 시대에 살고 있다. 갈증을 느끼는 고객에게 물을 드리는 것은 더 이상 서비스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심부름에 불과하다. 컵이 비워지기 전 물을 드리는 것, 혹은 고객이 갈증을 아예 느끼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쓰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시대의 진화된 서비스라 말할 수 있다.

‘눈치’는 결국 상대방을 향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그 사람이 타인을 향해 자신의 모든 감각기관을 열고 반응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상대방을 향한 관심과 애정에 뿌리를 두고 싹을 틔워 자라나는 ‘눈치’이니 승무원의 자질로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12월이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 나의 서비스 나이테도 한 줄 더 늘어났다. 혹시 타성에 빠져 승객을 향한, 동료를 향한 나의 ‘눈치’가 녹슬지는 않았는지 나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겠다.

대한항공 승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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