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발견 / 최정운 지음 / 미지북스

한 사회의 지형을 파악하는 데 문학작품만큼 좋은 텍스트는 없다. 당대 사회와 그 시절을 온몸으로 받아낸 인간의 삶을 묘사하지 않고서는 문학이 탄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문학은 한 사회를 이끌 사상과 이념을 배태하기도 한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최정운 교수는 ‘한국인의 발견’에서 사회와 문학이 주고받은 길항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전작 ‘한국인의 탄생’에서 조선 후기 소설은 물론 근대 문학작품과 작가를 통해 한국 사회의 기원을 추적했던 저자는, ‘한국인의 발견’에서도 예의 “한국인,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천착한다. 저자가 정치학자로서 문학에 천착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부재” 때문이다.

저자가 선택한 첫 작품은 이태준의 ‘해방전후: 한 작가의 수기’이다. 해방 공간에서 “픽션이나 장편 소설은 거의 쓰이지 못했”는데, 그나마 이 작품은 소설가 ‘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당대 한국인의 표정과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무력감과 고립감에 시달렸던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지만 “조선인들은 마음대로 편안하게 자기 생각을 펴지 못하고, 오히려 일제가 물러가는데도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고 현은 증언한다. 사상이 제대로 영글지 못한 시대였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다. 해방 공간 당시 중요한 또다른 작품으로 저자는 채만식의 ‘논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데, 제 나라를 되찾았지만 국가에 대한 의식 자체가 없던 당시 상황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저자는 1990년대에 비로소 한국인이 근대적 인간으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사진은 1951년 피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왼쪽)과 영화 ‘써니’에서 재현된 1980년대의 여고생들.
저자는 1990년대에 비로소 한국인이 근대적 인간으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사진은 1951년 피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왼쪽)과 영화 ‘써니’에서 재현된 1980년대의 여고생들.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첨예한 논쟁과 갈등을 낳은 중대한 사건이다. 만개해야 할 사상과 이념은 좌우 이분법적으로만 용인되었고, 한국 사회의 진보를 추동할 사상들은 피어 보지도 못하고 져 버렸다. 저자는 손창섭의 ‘공휴일’에서 한국전쟁의 폐허가 낳은 무력감이 한국인들을 ‘좀비’로 만들었다고 일갈한다. “생명력을 잃고 성욕도 사라져 버린, 세상과의 친밀함을 잃어버리고 소외된 세상에서 의무감으로 일상을 반복하는” 좀비들은 지금도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황순원의 ‘소나기’에서는 “소년과 소녀의 풋사랑을 묘사한 한국 최고의 순수문학 작품”이라는 명제 아래 해석의 여지를 차단한 우리 교육의 아픈 현실을 비판한다. “소나기라는 일상의 시련도 견디지 못하고 스러져간 죽음”이 허다했던 전쟁 당시의 상황에는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창섭의 1950년대 후반 작품을 통해 저자는 한국인의 부활 의지를 설명하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시체나 다름없던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결국에는 생명을 얻어 살아 움직이는 한국인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1960년대 초 혁명의 불길로 이어진다. 시작은 이범선의 ‘오발탄’이다. ‘오발탄’은 사실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사회,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던 한 가족의 굴곡진 사연이 답답함을 자아낸다. 하지만 “좌절과 분노를 표현하고 해소할 길”이 없었던, 그래서 ‘인간 폭탄’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인은 폭발 직전이었다. 이에 미완일망정 혁명이 시작되었다.

‘역사와 개성의 시대’였던 1960년대, ‘분열과 연합의 시대’였던 1970년대, ‘투쟁의 시대’였던 1980년대를 지나 1990년대에 이른 저자는, 1990년대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근대로의 진입’이 일어난 시기라고 강조한다. “서구의 근대성을 흉내 낸 ‘짝퉁’ 근대화를 넘어서 근대성의 근본 문제의식이 내화돼 ‘근대’라는 시대의 문턱을 넘어 진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 등을 통해 정체성을 찾고자 발버둥치는 한국인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책을 닫는다. “우리의 모습을 늘 관찰해야 한다는 문제는 지성의 핵심적 활동이며… 늘 변하는 과정에서 각별히 의식집중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험준한 역사를 더 이상 겪지 않기 위한 필수의 활동인 것이다.” 문학 읽기를 통해 시대를 관통한 한국 근현대 사상의 기원을 찾고자 애쓴 저자의 공력이 뚜렷한 책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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