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우 아인소프 대표가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제주 골프장 오션 코스 9번 홀 그린 주변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박준우 아인소프 대표가 지난 10일 제주 서귀포시 롯데스카이힐 제주 골프장 오션 코스 9번 홀 그린 주변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박준우 아인소프 대표

제주에서 건축업을 하는 박준우(50) 아인소프 대표의 요즘 골프 스코어는 70대 초반. 한창 물이 올랐다. 골프 구력 8년에 불과한 박 대표의 고공비행은 스스로 만든 ‘시스템 골프’ 덕분이다.

지난 10일 제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박 대표는 “골프를 시작한 뒤 3∼4년 지났을 무렵 내 골프가 점차 ‘시스템화’돼 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면서 시스템 골프를 설명했다.

먼저 클럽별 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A4용지에 드라이버부터 웨지까지 거리별 ‘리스트’를 작성했다. 2년 전부터는 3개월에 한 번씩 스크린 골프장에 가고 있다. ‘연습 모드’를 통해 클럽마다 캐리와 런을 정확히 알아내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드라이버를 10번 정도 휘두르고 캐리와 런을 합쳐 비거리로 적어놓는다. 아이언 역시 이런 식으로 탄도, 스윙 크기를 조절하면서 통계치를 얻는다. 물론 부단한 연습을 통해 몸이 기억하도록 일관성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박 대표의 평균 비거리는 드라이버 230m, 5번 아이언 150m. 때론 그립을 내려 잡고 짧게 치거나 어깨 회전 크기를 조절해 보낼 거리를 맞춘다.

박 대표는 또 골프 공부를 열심히 한다. 골프 전문 서적을 쌓아놓고 있다. 관심이 높다 보니 레슨을 비롯해 멘털, 피팅, 스윙 역학에 관한 전문 분야의 서적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자신을 장비에 맞추는 게 아니라 장비를 자신에게 맞춰야 한다는 게 박 대표의 ‘지론’이다. 초보 시절엔 자신처럼 단신이라면 클럽의 라이 각을 더 눕힌 게 좋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레슨서적과 코치들은 ‘팔을 더 안쪽으로 굽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처럼 골프채에 맞춰 연습하는 걸 납득하지 못했다. 박 대표는 이후 아이언의 라이 각을 세 차례 조절한 끝에 몸에 맞는 지금의 클럽을 찾아냈다.

박 대표의 자동차 트렁크엔 시스템 골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골프 백 외에 드라이버, 우드, 하이브리드 클럽이 로프트 각과 샤프트 강도에 따라 모두 8개나 들어있다. 드라이버는 샤프트 강도에 따라 2개가 있으며, 라운드할 골프장의 코스 길이가 길면 장타용으로 세팅해 갖고 나간다. 우드 역시 이런 식으로 고르고, 그날 사용할 클럽을 골프 백에 넣는다.

박 대표는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했지만 일본 오사카(大阪) 대학원에서 도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기업 계열의 실내 건축 파트 일을 하다 1997년 독립해 조그만 건축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곧바로 외환위기가 불어닥쳐 문을 닫았다. 이런 식으로 4차례나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잇따라 실패했다. 박 대표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제주로 내려왔다. 2억 원도 채 안 되는 돈을 마련해 취미로 배웠던 커피 내리는 기술로 장사(카페)나 하면서 조용히 살자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올레길 열풍이 불었고 개업 1주일 만에 카페(레드 브라운)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손님이 넘쳐났고, 매장을 만들어 달라는 건물주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다시 건축업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만 20여 개 건물을 완공했다. 건물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재기에 성공했다. 이젠 제주의 건축가로서 자리를 잡았다는 박 대표는 오전에 100㎞가량 운전하며 4∼5곳의 공사현장을 누비고, 오후에는 골프에 매달리는 편이다.

박 대표는 꼼꼼한 사람이 골프를 잘 한다고 믿는다. 제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 그린의 언듈레이션을 담은 사진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면서 외웠다. 박 대표는 “라운드 전날 골프장 홈페이지에 들어가 코스 상태를 사전에 파악해 보는 것을 거르지 않는다”며 “특히 수준급 멤버들과의 라운드를 앞뒀다면 사전 정보 파악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2009년 8월 골프를 시작했다. 8년째로 접어들었다. 베스트는 이븐파 72타. 입문하고 2년 동안 티칭 코치를 바꾸지 않은 뚝심의 결과였다. 박 대표는 “월 1회 정도 코치와 라운드를 해왔고, 그때마다 한두 가지는 꼭 배우고 돌아왔다”며 “그리고 그 다음 날엔 연습장에서 전날 라운드에서의 잘못을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그의 코치는 박 대표를 ‘가장 빨리 80대 스코어에 진입한 제자’라고 칭찬한다.

박 대표에게 부상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부상으로 골프 실력이 향상됐기 때문이다. 갈비뼈에 두 차례 금이 가 제대로 힘을 줄 수 없었기에 또박또박 치면서 정확성이 높은 샷을 구사할 수 있었다. 골프와 욕심은 정말 상극이다. 박 대표는 또 림프샘에 암이 발병해 최근까지 3차례 수술을 받았다. 박 대표가 수술을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나기 전날, 지인들이 “언제 다시 골프채를 잡을 지 모른다”며 송별회를 겸한 라운드를 마련했는데 박 대표는 이븐파를 남겼다.

수술 후 박 대표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갑상선 제거 후 땀 분비 기능이 저하돼 체온 조절이 어려워졌고,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게 됐다. 전반에 잘 나가다가도 후반에 오버파가 속출하는 이유.

박 대표가 이븐파를 처음 기록한 건 골프 입문 6년 뒤였다. 지금까지 박 대표의 이븐파는 모두 8차례나 되지만 아직 언더파는 없다. 박 대표는 “이븐파가 나올 땐 전반이 2∼3언더파였던 경우가 많았는데, 꼭 후반에 말렸다”며 “‘오늘은 이븐파겠지’라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보기가 나왔고, 보기를 만회하려다 다음 홀에서 또다시 보기를 하는 악순환을 반복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제주 롯데스카이힐 포레스트 코스 8번 홀부터 후반 4번 홀까지 6개 홀 연속 ‘줄 버디’를 낚았지만, 파 3인 5번 홀에서 물에 빠트려 트리플 보기를 범하면서 무너졌다.

박 대표는 “골프란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얄궂은 운동”이라며 “골프는 또 약점을 보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샷이 아니라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5언더파는 충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제주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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