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 율곡 이이는 왜국의 침략에 대비해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전쟁 발발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그 결과 10년 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우리나라의 전 국토가 황폐해지고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은 오늘날 재난이나 대형사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재난이나 대형사고 발생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에 대비하는 투자가 미온적일 경우 실제 재난이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로 인한 피해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임은 물론이다.
재난이나 대형사고를 예방하고 이에 대비하기 위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충분한 투자가 안 되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재원이 충분하지 못하고, 복지정책과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등 단기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사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난 및 안전 관리에 대한 투자에는 소홀히 해온 게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지자체의 재난안전 관련 투자를 활성화하고, 특히 부족한 소방장비나 시설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2015년 담배에 부과되는 개별소비세의 20%를 재원으로 소방안전교부세(交付稅)를 신설했다. 이 교부세는 2015년 3141억 원, 2016년 4147억 원, 2017년에는 4588억 원으로 매년 느는 추세다.
이렇게 도입된 소방안전교부세는 지난 2년 동안 소방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됐다. 지난해에는 소방공무원의 개인 안전장비가 100% 보급됐으며, 내년까지는 낡은 주요 소방 차량과 부족한 구조·구급장비 등을 100% 개선할 예정이다. 이제 더 이상 소방공무원들이 화재진압 시 사용하는 장갑을 사비(私費)로 구입하거나, 교체 시기가 지난 구조·구급 장비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울러 지역의 재난 현장 대응 능력이 더욱 향상되고 지역 간의 소방 서비스 격차도 해소될 것이다.
한편, 소방안전교부세 제도는 지자체의 재난 및 안전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안전 문화 확산을 유도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소방이나 안전 관련 사업에 대해 투자를 늘린 지자체는 정부가 소방안전교부세 재원이 더 많이 교부되도록 교부 기준을 개선해 가고 있다.
또한, 지역 주민들이 생활 주변의 각종 위험 요인에 대해 안전신문고 포털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신고하면, 신고 건수와 지자체의 개선 실적을 교부 기준에 반영해 주민 참여가 활성화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 규정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지난 4월 이후, 하루 평균 203건이던 안전신고가 542건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등 소방안전교부세가 지역의 안전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소방안전교부세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첫째, 국가는 그동안 국고보조사업으로 진행돼 온 재난·안전 사업에 대해 소방안전교부세의 신설과는 별개로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지방은 기존의 재난·안전 사업에 투자해 왔던 지방비를 줄이고 교부되는 소방안전교부세로 대체해선 안 된다. 끝으로, 반드시 소방안전교부세는 재난과 안전을 위해 사용해야만 한다.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재난을 미리 짐작하고 이를 예방하는 것이 재난을 당한 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재난 및 대형사고 발생 시 피해를 생각한다면, 이를 막기 위한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방안전교부세가 이러한 지자체의 소방과 안전에 대한 투자 확대의 첨병 역할을 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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