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0년 4월 8일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감축을 위한 새로운 협정(New 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에 서명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10년 4월 8일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감축을 위한 새로운 협정(New 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에 서명하고 있다.
- 트럼프·푸틴 “핵능력 강화”

‘핵없는 세계’ 오바마 정책
트럼프 ‘폐기’ 잇따라 시사

푸틴 “안이하게 있어선 안돼”
핵전력 증강 최우선 강조

동북아 등 군비경쟁 촉발
“세계 재앙 시나리오 가능성”


미국·러시아가 22일 잇따라 핵 능력 강화 의사를 밝히면서 1990년대 종식된 냉전식 핵 경쟁 부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임기 8년간 주도해온 ‘핵 없는 세계’ 이니셔티브도 내년 1월 20일 차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끝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호전성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불예측성이 더해지면서 2017년 전 세계는 ‘각자도생’에 주력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트럼프가 이날 “핵 능력을 큰 폭으로 강화하고 확장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취임 뒤 핵 능력 증강에 주력하겠다는 의사를 간접 피력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도 한국·일본의 자체 방어를 주장하면서 핵 개발도 용인하겠다고 시사한 바 있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핵 정책은 기존의 감축이 아니라 증강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 폐기 검토에 이어, 또다시 1970년대 이래 유지돼온 미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을 뒤집겠다는 것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핵 없는 세계’를 주창하면서 8년 임기 동안 4차례 핵 안보정상회의를 개최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핵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는 또 다른 반(反)오바마, ABO(Anything But Obama) 정책이기도 하다.

대신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한 ‘핵무기 현대화’ 사업을 적극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CNBC는 전망했다. 핵무기 현대화 사업은 향후 15년간 총 1조 달러(약 1203조 원)를 투입해 ‘핵 삼원체제(Nuclear Triad)’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 탑재 미사일을 현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미 해군 원자력잠수함은 30년 된 노후 기종이며, 주력기인 장거리 폭격기 B-52도 60년 이상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트럼프가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하면 미군은 신형 탄도미사일 발사 잠수함(SSBN) 12척과 공군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450기 배치, 신형 장거리 폭격기 B-21 등을 보유하게 되면서 러시아와의 ‘핵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도 핵 능력 증강에 주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이 이날 3대 전략 핵무기가 필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2017년 러시아군의 최우선 목표로 핵 능력 강화를 내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크렘린 궁에 따르면 이날 푸틴 대통령은 군 고위 관계자 회의에서 “잠시라도 안이하게 있을 경우 상황은 바로 변한다”며 가장 우선적으로 전략 핵무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서방이 구축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 체계를 돌파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핵 능력 강화 발언은 오는 25일로 소련 해체 25주년을 맞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당시 서방진영은 소련의 해체로 냉전에서 무혈승리했다고 자축했지만 이제 25년 만에 푸틴 대통령은 상황 반전을 꾀하고 있다. 시리아 알레포 승전에 힘입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에 공세를 펼치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핵 능력 강화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구소련시절 미·소 대결 구도를 재현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 10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있는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이스칸데르-M’과 핵탄두 장착 가능 미사일을 실은 호위함 2척을 배치했다. 또 같은 달 북해함대와 태평양함대가 SLBM과 ICBM을 시험 발사하며 핵전력을 과시한 바 있다.

핵 감축 단체인 ‘글로벌 제로’의 데렉 존슨 국장은 이날 성명에서 “트럼프가 새로운 핵 경쟁을 촉발하는 발언을 했는데, 단 한 개의 핵무기 사용도 전 세계 인류와 환경·경제에는 재앙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러시아의 핵 경쟁은 이런 악몽 같은 시나리오의 현실화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러시아가 핵 증강에 나서면 중국도 핵 능력을 높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동북아에서의 군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처한 한국·일본에서는 자체 핵 개발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전 세계 핵무기 보유국은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8개국이며, 북한도 핵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워싱턴=신보영 특파원 boyoung22@, 김석 기자 su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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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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