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이제 사그라들고 있다. ‘타깃’도 국회를 거쳐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촛불의 성격 역시 즉각 하야와 구속 수감까지 주장하는 ‘강경’에서, 헌재 심판을 기다리고 따르자는 ‘온건’까지 다양한 분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촛불은 여전히 짙은 페이소스를 남기고 있다. 대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선택을 받은 대통령을 시위로 끌어내리는 것이 과연 법치(法治)인가, 여소야대를 앞세운 거야(巨野)의 대통령 탄핵소추가 비박 협조를 받은 인민재판인가라는 메아리도 맴돈다. 심지어 의혹을 제기해 촛불을 이끈 언론조차 ‘탄핵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제 격한 함성을 뒤로 하고 진짜 여론과 민심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진짜 보수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자성해 볼 때다.
분노는 전염된다. 누가 대통령인지도 모르는 대통령의 타락은 이 분노를 배가시켰고 전염 속도 또한 광속으로 만들었다. 같은 국민, 같은 생각임을 확인하고자 촛불은 광장으로 광장으로 향했다.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광장에 쓰레기조차 남기지 않았다. 광장은 위안이었으며 축제가 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여론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고 51.6%의 지지를 받고 취임한 대통령을 광장에 모인 몇십만, 몇백만의 시위로 물러나게 하는 것은 법치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민심인가. 투표 당일 표심인가, 촛불 든 민심인가. 과연 시점의 문제인가. 대선의 선택이 정당했다면 촛불의 민심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는 얘기인가. 하야 국민투표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탄핵소추는 국회 권력을 가진 야당이 주도했고 여당 내 비박이 가세했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그대로이며 어느 것 하나 법치 아닌 것이 없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대선의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광장의 촛불도 존중돼야 한다. 촛불 광장에 한 번이라도 가보았는가. 분노에 찬 거친 숨소리와 눈빛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았는가. 촛불의 분노는 정당했다. 민심을 매주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촛불 숫자로 재단하는 언론의 가벼움에는 주최 측 의도에 기자들의 소망이 편승됐다고 치자. 하지만 촛농 떨어지는 광장의 문명사는 엄숙하지 않을 리 없다. 장삼이사의 함성에는 좌우가 없었다. 느닷없이 등장한 ‘이석기 석방’ 구호도, 석방 요구 서명도 외면받았다. 심지어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해 격한 몸싸움까지 벌여 입건되는 사례도 있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구호도 마찬가지였고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 요구도 같았다. ‘미군 철수’ 같은 친북 주장도 나왔지만 한결같이 거부됐다. 좌파가 똬리를 틀 공간은 없었다. 축제 마당을 편 주최 측이 진보 좌파였지만 촛불은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부패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래서 촛불을 보수의 위기로 보는 시각은 정당하지 않다. 보수 재집권의 위기일 수는 있지만. 촛불은 건강했다.
늘 그렇듯 촛불의 왜곡은 정치권에서 벌어진다. 걸핏하면 물어본 적도 없는 ‘국민의 뜻’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모조리 자기식으로 해석한다. 촛불도 예외가 아니다.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혁명이 될 것이라는 섬뜩하기까지 한 진보 좌파 대선 주자부터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질 것이란 가짜 보수까지 전부 아전인수(我田引水)다. 시간을 끌고 버티면 여론이 반전될 것이라는 친박의 후안무치도 어이없지만, 촛불이 자기편이라고 착각하는 야당은 더 한심하다. 광장은 대선 투표장이었고 촛불은 지지 투표였나. 마치 대선 승리라도 한 듯 별의별 오만이 다 나온다. 한·미 간에 합의한 사드 배치를 철회해야 한다느니, 정권을 잡으면 도널드 트럼프보다 김정은을 먼저 만나겠다느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폐기하겠다느니. 촛불이 그런 뜻이었나?
내 뜻대로 모든 것을 이루리라는 기필(期必)은 이제 거둬야 한다. 촛불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촛불엔 정파가 없다. 촛불은 촛불일 뿐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촛불이 그동안 가려진 진짜 보수와 가짜 보수를 구별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희망이다. 진보란 미명 아래 진영 깊숙이 똬리를 튼 친북 좌파가 진보의 골칫거리이듯, 보수 껍질을 뒤집어쓰고 사익을 추구해 도덕적으로 타락한 가짜 보수도 보수의 두통거리이다. 이제 누가 가짜 보수이고 진짜 보수인지 솎아내야 한다. 껍데기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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