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옹기展’ 이현배 장인
발물레·잿물 등 전통방식 이용
자연유약 발라 생명의 옹기 제작
도시서도 장 담가먹을 수 있는
편리한 생활그릇 만들려 노력
속이 비어 두드리면 청량한 소리를 내고, 무엇이든 담으면 맛있게 잘 곰삭여 주며, 좋은 기운은 꼭 가둬두고, 나쁜 기운은 뱉어내는 옹기. 그래서 사람들은 옹기를 ‘숨 쉬는 그릇’이라고 부른다.
이현배(54) 장인은 우리 시대에 몇 안 남은 ‘옹기장이’다. 각양각색의 항아리와 장독을 제품으로 내놓는 곳이 많지만 그처럼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는 전북 진안군 백운면 솥내마을에 차려진 자신의 작업장에서 발물레로 그릇을 빚고, 잿물 유약을 입히고, 가마에 구워 옹기를 만들고 있다.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에 있는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을 찾아가면 이현배 장인의 옹기를 만날 수 있다. 미술관에서는 내년 2월 26일까지 ‘오늘의 옹기: 이현배’란 타이틀로 26년간 전통 방식을 고수해온 이 장인의 옹기 작품들을 전시한다.
“도시는 지나치게 거대화하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너무 작아지고 있습니다. 위기 상황입니다. 이러한 때 옹기가 삶의 품격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이 장인의 옹기는 미학적으로도 기능적으로도 우수하다. 그러나 그는 옹기의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면에 더 방점을 둔다. 그는 자신의 옹기에 대해 ‘미학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많은 분이 옹기를 오두막이나 초가집에서 써야 할 것으로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1990년대 중반 옹기를 굽기 시작할 때부터 도시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그분들이 아파트에서 메주로 장을 담가 먹는 편리한 옹기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시골에서 흙집 짓고 살지 않아도 도시 한가운데서 제대로 된 발효 음식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그는 도시 평균 살림 규모에 적합한 옹기 세트를 계속 제안했다. 실제로 이 장인의 키다리 항아리는 모양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진 아파트 구석에 세워놓기 좋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국수상과 서양식 상차림 식기 세트, 에스프레소잔 ‘엄지’와 커피로스터, 한약 한 첩을 데워 먹기 편한 ‘약손’, 거친 옹기 표면과 수저가 닿았을 때 쇳소리가 덜 나도록 보완해 만든 ‘예올 회청 세트’도 있다. 그러나 이 장인은 형태와 쓰임새는 현대적이어도 만드는 방법은 철저히 전통을 고수한다.
“성긴 흙을 서로 이어 구성력을 가진 몸을 만들고, 자연유약으로 피부를 입혀 뜸 들이듯 지그시 구워야 ‘숨 쉬는 옹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광명단 유악을 발라 가스가마에서 구워내는 매끈한 옹기는 ‘껍데기만 옹기’죠.”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이 장인의 흙의 물성과 형태에 대한 깊은 이해, 성형·가마축조 및 번조 기술을 높이 평가해 9년 전부터 그와 함께 영산강 유역 고대 옹관(甕棺) 제작기술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신의 주장과 달리 그의 옹기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이 장인이 만든 독(항아리)은 일반 남부식보다 어깨가 벌어지고, 입술이라 불리는 ‘전’을 야무지게 잡기 때문에 제작 과정상 덜 틀어져 완성미가 높고 역동적인 미적 특징을 보여준다.
기존에 일반적인 옹기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도 눈길을 끈다. 곤쟁이 젓독의 원통 조형미를 현대적으로 되살려낸 쌀독이나 장독이 땅에 묻힌 모습을 닮은 납작연봉단지, 세련된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없는 자라병이 모두 미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옹기는 세상에 태어날 때 태항아리, 밥을 담는 오모가리, 똥을 담는 합수독아지, 죽어서는 옹관까지 한반도 사람들의 나고 죽는, 그야말로 처음과 마지막을 담는 모든 것입니다. 제가 옹기를 즐겁게 만들며 보람을 느끼는 것도 옹기가 그처럼 우리 삶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장인은 원래 호텔리어였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를 마친 후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6년여 근무했다. 호텔 로비에 설치된 헨리 무어의 조각작품에 감동받아 화실에서 3년 동안 조소를 배웠고, 전남 보성을 여행하다 박나섭 옹기점을 알게 돼 그곳에서 3년간 옹기 굽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1993년 고향인 전북 장수 인근으로 조선시대 유명한 옹기마을이었던 진안 마이산 옆 솥내마을을 찾아 옹기를 굽기 시작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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