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선진 대한민국을 꿈꾸며 기대를 걸었던 2016년도 다 지나갔다. 불행하게도 지난해 대한민국은 분노와 증오, 선동과 고함, 후회와 눈물로 얼룩진 사분오열의 정치밖에 없는 ‘민주공화국’이었다.

최순실 게이트로 빚어진 이 불행한 사태는 심층적인 의미에서 구조적으로 예견됐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절망하고 주저앉을 순 없다.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는 ‘가장 깊은 밤은 새벽의 시작이다’며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원형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성경에도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여전히 그대로 있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시련과 계절을 견디며 극복해왔다.

새해를 맞아 영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걸맞은 선진 한국을 다시 건설할 수 있어야 한다. 허탈과 분노, 좌절과 절망의 늪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구해내기 위해서는 나라를 이렇게 혼돈 상태에 빠지게 만든 데 책임이 있는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들, ‘제4의 정부’로 일컬어지는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로 위장한 정치집단들민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은 인간의 잠재적 가능성을 경쟁을 통해 가능한 한 최대로 발휘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법과 규범, 경쟁자에 대한 배려, 정직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하게 되면, 그것은 본능적인 이기심으로 인해 비극적인 현상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야당과 여당이 끝까지 타협을 이루지 못해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게 됐던 것은 정치인들이 국익보다는 정파적인 사익(私益)만 추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정부는 노동자 고용·복지 문제도 중요하지만 우리 경제를 받치고 있는 대기업의 국제 경쟁력이 먼저라 주장하고, 야당은 이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며 정쟁만 계속했다. 그것은 그들 모두 국익보다 오직 정권 쟁탈을 위한 포퓰리즘 때문이 아니었던가. 국민은 이런 망국적인 정치가 지난해로 끝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새해 정치인들은 국민에게 보다 겸손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그들이 정말 다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위에 군림할 자격이 있고 비교우위에 있을까. 금배지를 달고 있지만, 그들은 거친 말을 해서 스스로 함량 미달의 인물로 만들지 않았던가. 정치인들은 배반과 ‘배신’을 정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신의와 의리는 법 위에 있는 윤리와 가까운 것으로서, 중요한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시저를 살해한 브루투스를 로마 광장의 대중은 애국자라고 말했지만, 단테는 ‘신곡(神曲)’에서 신의 법령을 파괴한 범죄자라고 했다. 특검과 헌재가 대통령의 ‘속옷까지 들여다보는 일’을 함으로써 갈채를 받는다면, 그것이 과연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 되고 새 정치를 이룩하는 길이 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으로 차치하더라도 올해 있을 대선에서는 과거처럼 흑색선전으로 승리를 거머쥐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난해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입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은 대선을 조용히 모범적으로 치르고 새 대통령과 함께 통합의 정치를 이뤄내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정치란 승부를 정하는 게 아니고 진실한 일이라고 한 윈스턴 처칠의 말이 이 땅에서도 실천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