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재수강위해 요청땐
부정청탁 해당… 교수들 거부
法시행후 첫 성적 정정 혼란
“일부러 기말고사 망쳐야할판”


대학가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후 첫 번째 학점 정정 기간을 맞아 대학가가 홍역을 앓고 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재수강 기준을 살짝 넘는 애매한 성적을 받을 경우, 다음 학기에 다시 수업을 듣기 위해 학점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청탁금지법 탓에 학점을 깎아달라는 것도 부정청탁에 해당하게 되자 학생들 사이에서는 “A를 받을 자신이 없으면 아예 C+ 이하가 나오게 시험을 망쳐야 하는 거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재학 중 취업에 실패해 졸업을 미룬 고려대생 김모(24) 씨는 2일 “지난 학기 몇 과목에서 B+를 받아서, 다음 학기에 A 이상으로 올리기 위해 재수강이 가능한 C+로 내려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김 씨는 “전에는 학점을 내려달라고 하면 통상 교수들이 받아들여 줬는데, 이번에는 교수들이 ‘성적 변경 불가’라고 미리 밝힌 뒤, 성적 정정 요청 이메일을 아예 읽어보지도 않더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재학생 윤모(26) 씨는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워 학점에 민감한 시대인데, 다음 학기부터는 A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고의로 기말고사를 망치기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불평했다.

하지만 대학들은 기존 관례가 어떻든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는 단과대 차원에서 교수들에게 ‘학생들의 학점 정정요청이 전부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발송했으며, 서울의 다른 사립대학 관계자들도 “성적 정정 요청 행위에는 학점을 ‘내려달라’는 것도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 학생들의 요청을 받아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청탁금지법으로 인한 대학가의 홍역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교수는 “몇몇 학생은 ‘수업을 같이 들었던 동료 학생이 교수에게 성적 정정 문의 메일을 보냈는데 김영란법 위반이 아니냐’는 항의성 제보까지 하는 통에 교수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생들의 김영란법 위반 문의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규정이 명확히 마련되지 않거나 학생들이 규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음에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에서 규정한 부정청탁의 범위가 모호하며 학교마다 규정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아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유근 기자 6silver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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