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민경갑 화백이 2017년 정유년을 맞아 새롭게 그려 문화일보에 공개한 작품 벽사계(避邪鷄, 53×46㎝). 붉은 닭의 꼿꼿한 기개를 통해 모든 사악함과 액운을 막아내려는 힘찬 기상을 표현했다. 왼쪽 작은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전시한 닭 모양 연적.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인 민경갑 화백이 2017년 정유년을 맞아 새롭게 그려 문화일보에 공개한 작품 벽사계(避邪鷄, 53×46㎝). 붉은 닭의 꼿꼿한 기개를 통해 모든 사악함과 액운을 막아내려는 힘찬 기상을 표현했다. 왼쪽 작은 사진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전시한 닭 모양 연적.
鷄頭 비하·살처분 등 수난 … 명예회복 나선 닭

대한민국의 닭들에게 지난 2016년은 수난의 해였다. 탄핵 재판을 앞둔 현직 대통령을 비유하는 패러디에 ‘닭대가리’라는 비속어로 등장하더니, 연말에는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의해 ‘홀로코스트’를 연상케 하는 살처분의 대상이 됐다. 지난 한 해 동안 서러움을 제대로 맛본 닭이 2017년 새해에는 명예회복과 함께 굳건히 다시 설 수 있을까.

닭은 십이지의 열 번째 동물로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기유(己酉), 신유(辛酉) 등으로 육십갑자를 순행한다. 그중에서도 올해는 정유년으로 십간의 정(丁)이 불의 기운을 상징하기 때문에 ‘붉은 닭’의 해다. 붉은 닭은 길조로 알려져 있다.

닭은 어둠 속에서 여명을 알리는 역할로 인해 전통적으로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으로 받아들여졌다. 신라의 건국 신화에 닭이 등장하는 것도 닭이 지닌 그 같은 상징적 의미 때문이었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옛사람들은 믿었다.

‘동국세시기’에도 보면 새해가 되면 가정마다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 액을 몰아냈다고 한다. 한 해 농사의 풍흉도 ‘닭울음 점’으로 봤다. 대보름날 꼭두새벽에 첫닭이 열 번 이상 울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부귀공명과 입신출세,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데도 닭이 사용됐다. 조선시대에는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은 서재에 닭 그림을 걸었다. 닭 볏이 벼슬을 상징하는 관을 쓴 모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 닭 그림에는 맨드라미와 모란을 함께 그렸다. 맨드라미는 닭 볏과 모양이 비슷해 관 위에 관 하나를 더하는 것으로 최고의 입신출세를 의미했다. 그리고 부귀의 상징인 모란과 공명의 상징인 수탉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을 기원했다.

또 예로부터 반가운 손님이 오면 닭을 잡는 것이 최고의 손님 대접이었다. 씨암탉을 잡는다는 것은 집안의 중요한 재원 하나를 잃는다는 말이다. 계란도 귀하게 여겨 친척의 생일이나 결혼, 환갑 때 꾸러미를 싸서 부조했다. 계란은 탄생·부활·소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못 갖는 여인이 매월 달 수대로 계란을 먹으면 잉태한다’ ‘난산 때에 날계란을 먹으면 순산한다’ 등의 속설까지 등장했다.

결혼식 초례상에도 닭이 필요했다. 신랑 신부가 초례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을 때 닭을 청홍 보자기로 싸서 상 위에 놓거나 동자가 안고 옆에 서 있었다. 닭 앞에서 결혼서약을 한 것이다. 이처럼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인 혼인에 닭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그만큼 닭을 길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은 모성이 강하면서 총명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암탉은 알곡을 하나 주웠어도 반드시 부리로 일일이 부숴 병아리의 작은 부리로 먹기 좋게 흩어준다. 또 지능도 여타 동물에 비해 낮지 않다. 애완 닭을 키우는 커뮤니티에 가면 훈련 여부에 따라 주인도 알아보고, 자기 영역도 반드시 지킨다는 주장이 많다.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의하면 닭은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 “머리에 붉은 관을 쓰고 있어 문채(文彩)가 나고, 다리에는 긴 뒷발톱과 날카로운 발톱을 지녀 무(武)를 겸비했고, 강한 적을 앞에 두고도 감히 싸움을 벌이니 용기가 있고, 먹이를 얻으면 ‘꼬꼬’ 하면서 서로에게 고하니 인의(仁義)가 있으며, 날이 샘을 고하여 해시계와 같으니 믿음을 지킨다”고 했다.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을 생각한다면 닭을 어리석은 지도자를 상징하는 패러디에 등장시킨다는 것은 진짜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닭은 뛰어난 지도자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장군의 투구와도 같은 닭 볏을 보면 카리스마가 어떤 것인지 실감 난다.

<도움말 =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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