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성탄절 이틀 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국제종교자유법안’(IRFA)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1998년 프랭크 울프 하원의원이 주도해 제정됐던 법의 새 버전으로, ‘무신론자’(atheists)와 ‘무종교인’(non-believers)도 종교의 자유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새 법안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는 유신론 및 비(非)유신론적 신념(non-theistic beliefs)뿐 아니라 모든 종교를 고백하거나 추종하지 않을 권리를 보호한다”고 돼 있다. 서구에서 유신론(theistic)은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의미와 함께 유일신이 상정된다. ‘비유신론적’이란 무신론과 무종교인을 포함해 종교 다원주의 등 다양한 신앙 형태를 아우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제종교자유법은 애초 미국이 극심한 종교박해 국가에 대해 외교·경제 정책으로 압박하고자 만들어졌다. 국무부가 펴내는 국제종교자유에 관한 연례보고서에서 항상 북한이 ‘최악의 나라’로 선정돼 우리도 익숙하다. 새 법안의 골자가 우리 피부엔 와 닿지 않지만, 국제적으로는 민감하다. 지난해에도 방글라데시에서 무신론을 주장하는 대학교수가 살해됐다. 이스라엘에서는 ‘무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유대교의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무신론자로 살려면 법원에 진술서와 수수료를 내고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와는 다른 차원이지만, 미국에서도 무신론자들이 종교단체의 세금 면제와 공교육에서 종교의 영향력에 반대하는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국민소득이 높을수록 세속화가 깊어져 무종교 인구가 증가하는 게 일반적인데, 미국은 유일하게 예외적인 나라였다. 유럽국가의 무종교인 비율은 미국보다 2∼3배로 높다.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미국 기독교의 근본주의 등 반지성주의에서 찾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조차 최근 무종교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2014년 조사에서 무종교 인구가 22.8%로, 2007년에 비해 6.7%포인트나 증가했다. ‘무종교인’은 미국에서 복음교회(25.4%)에 이어 두 번째 규모의 집단이다. 지난해 미국 마이애미대학에는 세계 최초로 ‘무신론학과’가 생겼다. ‘신학과’에 대비되는 이 학과가 생길 수 있게 기금을 낸 사람은 “무신론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라고 기부 이유를 달았다. 미국과 성향이 비슷한 영국도 지난달 조사에서 1년 사이 무종교 인구가 33%에서 38%로 5%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반대한 사람 중 무종교 비율이 45%로, 찬성한 사람들보다 10%포인트나 높았다. 진보적 성향의 국민에서 무종교 비율이 높은 것도 세계적 공통점이다.
한국도 지난 연말 통계청의 종교인구 조사발표에서 10년 사이 무종교 인구가 9%포인트나 증가해 처음 절반을 넘어 56.1%에 달했다. 무종교 인구의 증가는 소득·복지 수준의 향상과 궤를 같이하고, 정치적 성향에도 변화를 보인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도 종교단체에 대한 세금과 보조금 혜택 규모가 엄청난 만큼 ‘무종교인의 자유’ 차원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조짐이다.
ejye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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