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구조 속의 안보 및 경제 위기와 함께 최순실 사태는 지난해 우리의 민주 행로를 아주 어둡고 힘들게 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민주 행로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한 것은 법치주의(法治主義) 덕분이며, 그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성숙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법치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전제이자 그 요소다. 자유민주주의는 그 목표나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고, 목표나 내용에 이르는 절차·제도에 의해 정의된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민주주의 표식의 핵심이 ‘국민의’(of the people) ‘국민을 위한’ (for the people)보다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목표나 내용은 민주주의 절차·제도의 산물로 나와야 한다. 민주주의 절차·제도는 법치주의로 표현·담보된다. 새해의 화두는 법치주의일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는 보수·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공통분모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시 퇴임을 촉구하는 광화문 ‘촛불 목소리’는 광장의 직접민주주의도, 국민에 의한 주권 행사의 표현도 아니다. 광장 민주주의는 고대 도시국가에서나 가능하지, 훨씬 많은 인구와 훨씬 넓은 지역을 아우르는 현대 국가에선 불가능하다. 박수나 함성의 민주주의는 인민재판식 민주주의다. 국회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결의에 따라 현재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권한 행사를 대행하는 체제에 들어가 있다. 대행할 수 있는 대통령 권한의 범위는 선례를 포함해서 국가적·헌법적 합리성·필요성을 가지고 판단할 문제다. 야당이 주장하는 무조건적인 ‘소극적’ 범위란 반(反)헌법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나는 불안정한 몇 남미 국가나 인도네시아의 드문 사례를 따를 것인지, 그런 사례가 없는 미국을 포함한 안정된 선진 민주국가의 예를 따를 것인지의 결론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겨져 있다. 내각책임제 국가에서는 국회의 내각 불신임 결정이 탄핵을 대행한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탄핵사유에는 반역, 뇌물, 기타 크고 작은 잘못(other 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원이 소추하고 상원이 심판한다. 그에 비해 우리는 직무 집행상의 헌법이나 법률 위배를 사유로 해 국회가 소추하고 사법기관인 헌재(憲栽)가 심판한다. 이러한 차이도 유의미하게 작동할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의 인용이나 기각의 결정은 크게 다음 다섯 가지 변수에 달렸다. 첫째, 증거에 따라 직무 집행상의 헌법이나 법률 위배 사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 낼 수 있느냐. 둘째, 그 사실이 직무 집행상의 헌법이나 법률 위배를 구성하느냐. 셋째, 그 위배가 탄핵 결정을 정당화할 만큼 중대한가. 넷째, 재판관이 진보·보수 간 극심한 견해차를 보이는 여론, 선입견, 편견으로부터 법관으로서 얼마나 독립할 수 있느냐. 다섯째, 삼권분립의 원칙상 사법기관에 의한 대통령 탄핵 결정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
이 중 두 번째 변수와 관련해 헌법 조항들이란 추상적·개방적으로 광범위하게 규정된 것들이란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재판 규범으로 작동키 위해 그것이 타당해야 할 사실관계의 범위가 특정 또는 한정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용하기 힘들다. 인민 또는 군주 주권의 주장이나 실현 노력의 사실이 아닌 한 무엇이 국민 주권에 위배되는지 판단키는 어렵다. 헌법의 민주공화국, 법치주의, 생명권 등도 마찬가지다. 법치주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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