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에는 ‘외부’가 없었다. 거의가 그랬다. ‘작품’으로 덩그마니 있을 뿐, 그것들은 이른바 현실이라든가 일상이라든가 하는 ‘외부’를 작품 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고립과 단절을 자초하며 작품 저 홀로 낯선 질서를 지어냈다. 인과와 의미 등 현실적 연관 따위 아랑곳 않고 에일리언의 눈을 끔뻑거리며 우리가 대하고 있는 현실을 의심투성이의 눈길로 노려만 보았다.
왜 그러는지 알겠다. 이러한 작법의 태도와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점점 커져가는 한국소설의 한 물길이기도 하니까.
이에 대한 반발로 ‘현실’을 재구성하여 창작된 소설을 당선작으로 뽑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플랫폼’은 어디까지나 경향이 아닌 솜씨로 뽑힌 작품이다. 아직은 작위의 봉합선을 제대로 감추지 못했으나 본심에 오른 응모작들 가운데 문장의 오류가 가장 적고 안정적이며 ‘생존동력으로서의 어둠’이라는 패러독스를 여의하게 다루었다. 소설에 전심전력할수록 행복해진다는 것을 오늘 크게 확인했을 테고 앞으로 더 그러할 것이니 이 새내기 작가에게 어찌 축하를 아낄까.
이외의 작품들은 높은 실험의식과 패기에 비해 소설 요소의 운용이 당선작에 미치지 못했다. ‘올드 픽쳐스’와 ‘로젠의 다리를 건너는 시간’과 ‘포터를 타고’도 수작이었다.
‘미드’적인 감성이 나름의 문제 의식을 갖고 한국문학에 스며드는 이유를 모를 바는 아니나, 아쉽게도 ‘올드 픽쳐스’의 작가에게는 박민규라든가 오한기의 몇몇 소설이 이룩해 낸 성과를 머지않은 시일 안에 너끈히 따를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기로 했다. 사랑 혹은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물리학 이론 체계로 재구성하는 서사가 최근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로젠의 다리를 건너는 시간’이 독자의 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물리학과 신앙의 경계를 석명하게 인용할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낡은 포터지만 그 ‘포터를 타고’ 달리는 종대와 복구의 안팎을 거침없이 관통해내는 작가의 감각은 참으로 날렵하고도 통쾌했다. 그런데 날렵하다 보니 찬찬하지 못해 문장이 자주 미끄러졌다.
심사위원 김원우·구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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