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위기의 거제’ 르포
35년 직장 퇴직후 실업급여
“경기회복 기미 안보여” 한숨
작년 거제지역서 2만명 실직
희망센터엔 4개월새 4200명
공단 곳곳 폐업·매각 현수막
짓다 만 거대 구조물 흉물로
식당들 직격탄 연말에도 썰렁
미분양 급증…2000가구 육박
지난해 12월 27일 경남 거제시 고현동에 사는 김수민(59) 씨는 같은 지역에 있는 거제조선업희망센터를 찾았다. 대전 출신으로 35년 전인 1981년 거제도에 조선소가 건립될 무렵 이곳에 정착했던 김 씨는 정년을 1년 남긴 상황에서 희망퇴직을 신청해 지난해 10월 정든 직장을 떠났다. 김 씨는 조선업희망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정산받고 재취업을 위한 교육을 받고 있지만 장래를 생각하면 막막하다.
김 씨는 “주변에서 ‘경기가 다시 좋아질 것이다’고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아 새로 가게를 내거나 창업하는 일은 생각도 못한다”며 “그동안 해왔던 일을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도 조선업희망센터는 실업급여를 타거나 재취업을 알아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해 8월 개소한 희망센터를 찾은 민원인은 4개월 만에 50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4000명 이상이 이전에 조선업이나 관련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맡길 데가 없는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희망센터를 찾은 여성 구직자들도 눈에 띄었다.
한때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며 호황의 대표 지역으로 꼽혔던 경남 거제시는 현재 유례없는 경기침체를 겪고 있었다. 지역 내 기간산업인 조선업이 위기를 맞고 업체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면서 지난해 거제 지역에서만 약 2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큰 회사들은 아직 수주 물량이 남아 있어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한내공단, 성내공단 등 협력업체들이 들어선 지역에선 가동을 멈춘 공장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공단 곳곳에 공장 매각이나 폐업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보였고, 공장 부지엔 만들다 만 거대 구조물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경우도 많았다.
협력업체 직원 임영훈(61·가명) 씨는 “지난해 5월 작업 도중 다쳐 병원에 누워 있었는데 두 달 뒤 회사가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며 “아직도 치료를 장기간 받아야 하는데,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 적용이 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일자리와 수입이 대거 줄어들면서 지역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옥포동이나 거제시 도심인 고현동 일대 식당들은 연말 ‘대목’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을 찾기 어려웠다. 고깃집이나 대규모 유흥주점 등은 대부분 사라지고 저렴한 밥집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기존에 퇴직자가 나오면 인근 식당을 잡아 떠들썩하게 환송회를 하며 기분을 냈지만, 희망퇴직자에겐 그런 것도 없었다”며 “일거리를 따라 들어와 정착했지만 이제 제2의 고향이 됐는데 이 같은 모습을 보면 착잡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부동산 시장도 황폐해졌다. 호황 때 아파트 등의 개발이 붐을 이뤘지만 갑자기 경기가 꺼지며 미분양도 늘었다. 2014년 말 3가구에 불과했던 미분양은 지난해 10월 현재 1681가구까지 증가했다. 완전히 정착하지 않은 근로자가 살던 원룸이나 소규모 아파트들은 최근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옥포동 인근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우종모 씨는 “이곳에 완전히 정착한 근로자들은 실업 상태에서도 그냥 지내지만, 젊은 세대는 숙소나 원룸 등을 내놓고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지역의 매물 시세도 이전보다 약 20∼30% 가까이 빠졌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하는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울산 동구 일대도 불황의 징조가 보였다. 울산 동구의 번화가 바로 옆 일산해수욕장 일대 유흥가 술집들은 줄어든 손님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2층으로 구성된 한 대형 호프집에는 같은 날 오후 손님이 단 한 팀밖에 없었다.
호프집 주인 박모(46) 씨는 “다들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송년 모임이나 회식 자리가 대폭 줄었다”며 “김영란법에 최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유행하면서 손님들의 지갑이 완전히 닫혔다”고 한숨을 쉬었다.
다른 소비심리도 위축된 것은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 울산·경남지역 점포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매출 신장률이 -1% 정도였고, 일대 롯데백화점도 0.6%의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었다.
거제·울산 =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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