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예외 없이 북한의 신년사가 발표됐다. 김정은은 지난 1일 낮 12시 30분 북한 TV를 통해 육성으로 발표했다. 북한 신년사는 1946년 1월 1일 0시 평양종 타종식 후 김일성이 ‘신년을 맞으면서 전국 인민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한 것이 시초다. 그 후 김일성의 신년사는 매년 육성방송과 ‘노동신문’ 1면 게재를 통해 발표됐다. 그러나 김일성이 죽은 뒤인 1995년부터는 육성연설이 사라지고 김정일이 직접 감수했다는 ‘공동사설’을 당보(黨報)인 ‘노동신문’과 군보(軍報)인 ‘조선인민군’ 등에 공동 게재하는 형식으로 바꿨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 김정은이 다시 육성방송을 재개했다.
북한에서 신년사가 발표되면 각급 당 조직은 물론 학교·직장에서 강독회를 조직하는 등, 그 내용을 철저히 숙지시킨다. 열성당원이라면 암송해야 한다. 그렇기에 문구 하나하나가 북한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남다르다. 그런데 올해 김정은의 신년사엔 예전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표현이 등장했다.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됩니다”라고 김정은이 밝힌 것이다. 이러한 ‘자아비판’은 그동안의 성과 부진에 대한 비난을 완화하고 인민을 중시한다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임으로써 대중적 기반을 넓히려는 의도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신성가족(神聖家族)’의 핵심교리(敎理)인 ‘수령의 무오류성’을 스스로 부정한 것으로 주민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권력 유지의 3대 요소는 합법성(legitimacy)과 보상(reward) 그리고 강제력(force)이다. 북한 체제가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이 3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져 버렸다. 이번 신년사를 보면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언급했지만, 구체적 수치나 내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북한 주민의 의식주를 보장해 주던 배급제는 이미 아래로부터 붕괴됐다. 현재 북한이 식량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장마당 덕분이다. 그리고 이제 합법성의 토대도 흔들리는 것이다. 신화(神話)로 구성된 북한 체제는 국민주권을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 체제와는 다르다. 그렇기에 김정은은 생모인 고영희의 이름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재일교포 출신이며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이제 북한 체제에 남은 것은 강제력뿐이다. 태영호 공사의 표현을 빌리면 ‘선행공포통치’다. 물론 김정은에게도 믿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밝혔듯이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또, 미·중 대립 구도가 격화하는 조짐이 나타나는 등, 국제 정세가 호전 기미를 보인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한국 정치권력의 변화가 이뤄져 한국의 ‘앞문’이 활짝 열리는 일이다.
sjh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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