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만화가 양경수 작가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2016.11) 중 한 장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고뇌를 표현했다.   양경수 작가 제공
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인 만화가 양경수 작가의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2016.11) 중 한 장면.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고뇌를 표현했다. 양경수 작가 제공
(20) 직장문화 현주소와 과제 <끝>

근로자 1000명 실태조사서
41% “제도 활용했다 눈치”

“칼퇴근 아니면 야근” 15%뿐
‘퇴근후 지시’ 55% 보통업무

‘야근이 미덕’ 이젠 지양해야
勞使 ‘인식의 대전환’ 필요


“그 직원이 어차피 회사에 있을 것 같아 퇴근 시간 이후에도 업무 지시를 하게 됩니다.”(대기업 A 부장·48)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오려면 정시퇴근해도 빠듯한데,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기가 아무래도 눈치가 보여요.”(무역회사 여직원 B 씨·35) 남성 육아휴직,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등 여러 가지 일·가정 양립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일터에서 이들 제도가 뿌리내리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1월 14일부터 30일까지 500개 기업과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근무 혁신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근로자의 41.1%가 ‘일·가정 양립 제도를 활용했다가 사내에서 눈치를 보게 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20.0%는 ‘일·가정 양립 제도 활용 이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제도 마련을 넘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기업과 근로자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기업과 근로자는 그들의 일터 문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며,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을까. 한국 일터 문화의 현주소와 정상일터 만들기를 위한 관건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장시간 근로에 머나먼 ‘정시퇴근’=고용부의 근무 혁신 실태조사에서 기업의 52.8%, 근로자의 55.2%가 근무 혁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 ‘정시퇴근’을 꼽았다. 이러한 수요를 반영한 듯 조사 대상 기업의 71.4%가 정시퇴근을 위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응답 대상의 40.5%가 ‘정시퇴근이 잘 실천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만성화한 야근과 장시간 근로는 회사의 정시퇴근 방침을 무력화했다. 조사 대상의 15.8%는 1주일에 50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주5일 근무(73.4%)가 가장 보편적인 근무형태인 조사 결과를 고려하면, 하루 10시간이 넘게 일하는 근로자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퇴근 시간 정각이나 5분 이내에 정시퇴근을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9.6%에 불과했다. 퇴근 시간 이후 1시간 이후에야 퇴근한다는 비율이 27.5%에 달했다. 주 1회 이상 야근을 한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근로자의 69.4%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야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장시간 근로가 만성화한 우리나라 직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퇴근 시간 30분 이후~1시간 이내에 퇴근한 경우’를 야근이라고 답한 근로자가 27.5%로 가장 많았다. ‘퇴근 시간 1시간 이후~2시간 이내 퇴근한 경우’를 야근이라고 정의한 사람도 22.7%였다. 퇴근 시간 정각에 퇴근하지 못한 것을 야근으로 인식하는 사람의 비율은 15.3% 수준이었다. 퇴근 시간 정각에 퇴근하는 것을 ‘칼퇴근’으로 표현하며 어색해하고, 사무실에 오래 남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한국의 일터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조사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근로자의 적은 근로자?” =상사의 태도가 바뀌는 것 역시 중요하다. 회사 내 직위가 낮을수록 정시퇴근에 대한 열망은 컸는데, 사원·대리급의 61.1%가 ‘정시퇴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과장급의 49.1%, 차·부장급의 50.6%가 정시퇴근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정시퇴근이 어려운 이유로는 △상사의 눈치 등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17.7%) △퇴근 무렵의 자료 요구 등 업무 지시(19.5%) △잦은 회식 등 업무 관련 만남(11.4%) 등이 꼽혔다. 상당수 야근이 불가피한 이유 때문이라기보다 불합리한 업무 관행에 따른 것이고, 상사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다.

퇴근 이후 제대로 쉴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라도 관리자 직위에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했다. 조사 결과 근로자의 74.0%가 퇴근 후 업무 연락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일주일에 1회 이상이 34.8%로 가장 많았고, 2~3회는 28.7%였다. 심지어 4회 이상도 10.5%로 적지 않았다. 이 중 ‘급한 업무처리로 인한 연락’은 42.2% 정도였다. 30.3%는 ‘생각났을 때 지시해야 마음이 편해서’, 17.9%는 ‘퇴근 시간 후 외부기관·상사 등의 무리한 자료 회신 요청 때문에’, 7.2%는 ‘어차피 직원이 회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등이었다. 퇴근 후 업무 연락 대부분(55.4%)이 관리자 직위에 있는 근로자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으로 평가된다.

◇‘CEO 의지’가 관건=근무 혁신 실태조사에서 근로자(22.4%)와 기업(33.3%) 모두 CEO의 의지가 장시간 근로, 야근, 일·가정 양립 저해 등 비정상적인 직장문화를 개선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야근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기업은 ‘업무 수행상 필요하다(79.7%)’ ‘업무량 과도(14.1%)’ 등 순으로 응답했다. 근로자들의 경우 ‘업무량 과도(43.5%)’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결국, CEO가 회사에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고 좀 더 효율적으로 인력을 편성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정상일터 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영주 기자 everywher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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