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보다 더 극적인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많은 이들이 책 펴볼 여유가 없는 가운데 국내 2위 서적 도매업체 송인서적의 부도로 출판계가 새해 벽두부터 위기에 몰렸다.
출판사와 동네 서점을 연결하는 도매업체의 부도이기에 일반 독자들에겐 직접적인 피해가 없어 심각함이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이곳과 거래해온 출판사와 서점들의 연쇄 부도까지 우려되고 있다. 또 위기 상황이 벌어지면 대부분 그렇듯 이번에도 최대 피해자는 작은 출판사와 작은 서점들이다.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책 독자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유통구조가 인터넷과 대형 서점 중심으로 바뀌면서 도매상 입지가 좁아진 데다 어음 결제나 위탁 거래 같은 출판계의 고질적인 유통 관행이 결합해 벌어졌다.
송인 부도는 여러모로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서적 도매상 연쇄 부도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1998년 매출 규모로 1∼3위를 달리는 보문당, 송인, 고려북스가 연쇄 부도 위기에 빠지면서 출판사는 물론 인쇄, 제지업계까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사태를 수습하며 출판계와 정부가 내건 목표가 ‘유통 현대화’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지난 20년 동안 그 목표가 이뤄지지 못했고 상황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02년 출판산업진흥계획이 제정되고 정부는 늘 출판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출판 예산 중 유통 선진화와 독서문화 증진에 배정된 예산은 5.6%와 6.6%에 불과하다. 2012년에는 출판진흥기구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출범했지만 인사와 운영에 대한 출판계의 불신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출판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출판진흥기구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게다가 1998년 도매상 연쇄 부도 위기 때 정부는 중소기업회생 지원자금 300억 원을 쓸 수 있도록 했고, 출판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던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500억 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이번 송인 부도에 대해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첫 반응은 개별 기업 부도에 대한 자금 지원은 어렵다며 선을 긋는 것이었다. 물론 1998년과 같은 대규모 연쇄 부도 사태가 아니며 출판계 내에서도 직접적인 자금 지원 가능성을 고려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출판뿐 아니라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해 해결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더 많다. 그렇다 해도 작은 출판사들의 연쇄 부도라는 위기 상황에서 개별 기업 일이니 자금 지원은 어렵다고 일단 선부터 긋고 나서는 것은 주무 부처가 취할 자세가 아니다. 특히 문화융성을 내세운 최순실 사업에는 수천억 원을 쓴 문체부이기에 이 같은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는 더 높다.
문체부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고, 조윤선 장관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으니 무슨 정책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조 장관은 직원들에게 밝힌 신년사에서 “국민과 정책 고객의 신뢰를 회복해 더 나은 문체부를 만들자”고 밝혔다. 진정으로 문체부가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언제나 국민을 위한 문화정책, 미래를 내다보고 진짜 필요한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문화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c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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