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정치학

‘대선의 해’ 새해가 시작되면서 여야 대권 잠룡들의 본격적인 세몰이가 시작되는 형국이다. 특히, 선거 관련 다양한 제도 개혁을 통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략이 난무한다. 개헌 여부에 대한 논의는 말할 것도 없고, ‘권역별 비례제를 시행해야 한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선거연령을 낮춰야 한다’ 등 이미 한두 차례 필요성이 제기됐던 논의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최근 ‘중대선거구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통해 기성 정치인과 유사한 전략적 행보에 나서고 있다.

대권 잠룡들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주장은 개혁을 위한 그동안의 학계 및 시민단체의 노력을 고려하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를 아무런 걱정 없이 반길 수 없는 것은 너무 각자의 입맛에 맞는 선거 제도만을 고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와 반 전 사무총장이 동의하고 있는 ‘중대선거구제(制)’ 역시 그렇다.

우선, 중대선거구제가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치료할 수 있는 제도일 수 있는가? 중대선거구제는 현행 소선거구제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하나의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대표자를 뽑는 제도다. 한국 사회에서 중대선거구제가 이 같은 긍정적 효과를 지닐 수 있을지 여부는 정당의 공천제 및 투표 방식 등 관련 제도의 구상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중대선거구제가 정당의 복수 공천을 허용하면서 시행된다면, 특정 지역에서 강세를 보이는 정당은 해당 지역 내 선거구에 복수의 후보를 공천하고 당선시키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 지역 분열과 갈등은 오히려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또한, 과거 일본의 경험은 이 제도가 지역 맹주적 정치인의 등장과 그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개인적 네트워크화와 같은 폐해를 불러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둘째, 단순히 선거 때만 등장하고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空約)이거나 후보들의 전략적인 선택은 아닌가? 사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구 획정 과정의 파행을 통해서도 봤듯이, 현역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혁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혁에 대한 주장 역시 단순히 홍보를 위한 전략적 선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중대선거구제는 제도적으로 기성 정당 및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기존 지지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지닐 뿐 아니라, 기성 정당에 의해 제2, 제3 순위 후보로 소외됐던 정치 신인을 동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대중적 인지도는 높은 반면, 이러한 인지도를 정치적 지지로 동원할 수 있는 중간 지도자급 정치인층이 부족한 이들 두 잠재적 대선 후보가 대중과 중간 지도자급 정치인 양자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매력적인 제도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선거제도 개혁 논의와 관련된 이 같은 우려는 비단 중대선거구제에만 국한된 것을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학계와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논의와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주 미비한 정도의 내용만 수용돼온 이유도 유사한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현 촛불 정국과 이후 대선 정국이 현행 선거제도 개혁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면, 그러한 기회를 현실화하기 위한 세부적인 논의와 평가, 그리고 정치인들의 결연한 의지가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논의도 이 과정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상정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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