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 케빈 켈리 지음, 이한음 옮김 / 청림출판
Becoming <되어 가다> Cognifying <인지화하다> Flowing <흐르다>
Screening <화면 보다> Accessing <접근하다> Sharing <공유하다>
Tracking <추적하다> Questioning <질문하다> Beginning <시작하다>
Filtering <걸러내다> Remixing <뒤섞다> Interacting <상호작용하다>
2000년, 나는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의 편집자였다. 한국에 소개된 케빈 켈리의 첫 번째 책이었다. 국가 부도 사태 이후, 한국경제를 살릴 새로운 동력으로 ‘닷컴 열풍’이 불어닥친 터였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공항 서점에서 한 번쯤은 꼭 들춰 보고 구입하곤 했던 ‘와이어드’라는 전설적 테크 잡지의 편집장이 쓴 책이었다. 아날로그 경제의 모든 법칙이 전복되는 거대한 충격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깊은 매혹으로 가득한 책이었다. 설마, 설마, 주춤대고 망설이는 사이에, 켈리가 선포한 경제의 법칙들은 어느새 전 세계의 완전한 현실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의 책에는 디지털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없었다. 이미 도래해 있던 미래에 대한 냉혹한 확인이 있었을 뿐이다.
테크늄이라는 조어를 들고 나와, 기술과 문화가 “전 지구적으로,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시스템”을 이루어 공진화하는 세상을 조망한 ‘기술의 충격’ 역시 그 폭과 깊이가 엄청났다. 이 책은 원시시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펼쳐진 기술의 ‘빅 히스토리’를 보여 준다. 인간이 기술을 발명하고 기술이 다시 인간을 확장하면서 발명하는 상호작용의 지구사가 무한대의 상상력으로 펼쳐진다. 이 책에 따르면, 오늘날 인류는 기술과 관련한 ‘특이점’을 지나는 중이다. 기술의 산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가 진화의 흐름을 생성함에 따라 인간이 기술(테크늄)을 바꾸는 능력보다 기술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훨씬 커졌다. 따라서 인간은 이제 ‘기술이 원하는 것’에 귀 기울임으로써, 즉 효율성, 창발성, 복잡성, 다양성, 편재성 등이 기술의 진화적 특성이고, 그 흐름으로부터 미래가 일어설 것이므로 앞날을 거기에 태우라는 것이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중에 녹아서 사라진다”고 했다. 이 말을 이어받아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정지가 아니라 변화가, 고정이 아니라 흐름이, 존재가 아니라 생성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기본이 되는 세상이다. “변화와 개선”을 규칙으로 가지고 있는 과학기술은 이러한 사회적 기초로부터 배양되었지만, 되먹임을 통해 다시 이 기초를 양자의 세계로부터 우주 끝까지 퍼뜨린다. “모든 것은 유동적이다. 완성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 끝나는 일도 없다. 결코 끝나지 않는 이 변화야말로 현대세계의 주축이다.” 따라서 이 세계에서는 모두가 어리바리한 새내기일 뿐 성숙과 숙련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강력한 변화를 되어 가다(Becoming), 인지화하다(Cognifying), 흐르다(Flowing). 화면 보다(Screening), 접근하다(Accessing), 공유하다(Sharing), 걸러내다(Filtering), 뒤섞다(Remixing), 상호작용하다(Interacting), 추적하다(Tracking), 질문하다(Questioning), 시작하다(Beginning) 등 열두 가지 힘으로 나눈다. 이 힘들은 이미 현실에서 강력하게 작용 중이다. 가령, ‘인지화하다’를 살펴보자. 흔히 상상하는 것처럼, 인간과 똑같은 수준으로 또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초월한 로봇개체(독립된 슈퍼컴퓨터)가 아니다. 그보다 인공지능(AI)은 무수한 컴퓨터 칩으로 이루어진, 행성 규모의 초유기체 네트워크에 가깝다. 아마도 전기와 마찬가지로 망 전체에 흐르다가, 필요할 때마다 접속해서 지능을 얻어 쓰는 식으로 인공지능이 존재할 것이다.
예를 들면, 구글의 인공지능은 검색엔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필요할 때마다 접속해서 그 지능의 인지를 나누어 쓴다. 그리고 검색값을 선택하는 행위를 통해 검색엔진을 더 똑똑하게 만든다. 동시에 우리는 검색을 이용해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하고 인지를 향상시킨다. 이러한 공진화 과정이 어색한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알파고든 베타고든, 패닉을 일으킬 필요가 전혀 없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질 수 있겠지만, 인간의 보이지 않는 진화도 계속될 것이다. 충격을 받고 기술의 흐름을 거부하거나 거스르지 않고, 이미 전기처럼 흔해 빠진 AI를 어디에 또는 무엇과 결합해 미래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낫다. 지난 세기에 전기와 결합한 재봉틀이나 냉장고나 톱을 만들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술의 ‘피할 수 없는’ 흐름은 과거를 파괴함으로써, 미래를 기회의 땅으로 만든다. 대담한 도전을 요구하는, 진짜 새롭고 대단한 것이 앞으로 무수히 세상에 등장할 것이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미래를 스스로 만들려 하는 이들이 반드시 읽을 책이다. 돌이켜보면 케빈 켈리의 예측은 큰 흐름에서 틀려 본 적이 없다. 새해 초, 더 늦기 전에 이 책이 나와 준 게 참 다행이지 싶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