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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의 몰락 / 최준식 지음 / 주류성

서양인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와 인연을 끊겠다’고 했을 때 주로 한국 불교의 문제가 이슈로 부각됐지만 그건 일부분이다. 이전에 나온 그의 말을 살펴보면 그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게 종교에까지 스며있는 한국 문화의 상명하복식 유교적 관습이란 걸 짐작할 수 있다. 하다못해 한 살 차이가 위계를 가지는 한국 문화를 우리는 당연시 하지만, 기본적으로 개인을 존중하며 대등한 관계가 우선인 서구문화를 익힌 현각 스님에겐 매우 낯선 세상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다양한 문화 분야에 대해 여러 저서를 펴낸 최준식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한국학과 교수의 이번 책은 이런 유교적 가부장제에 뿌리를 둔 한국 문화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에게 내면화돼 엔간해서 고치기 어려운 한국 문화에 대해 그는, ‘대반전을 위한 마지막 고언’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목청을 높인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절대권력의 허구성에 대해 우리 스스로 놀랐다. 저자는 네덜란드 사회심리학자 홉스테드의 ‘한 나라의 정치체제는 그 나라의 가족제도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번 정치적 난국의 저변에도 가부장에게 절대권력을 주는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원인을 찾는다. 이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문화가 나오지 않고서는 이 나라의 정치체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은 유교적 위계문화를 바탕으로 언어 등 사회문화의 ‘몰(沒) 문화적’ 천박성, 관혼상제 등 생활문화에서 드러나는 한국인들의 ‘무(無)문화성’, 종교·교육문화의 문제 등을 차례로 짚는다.

저자는 박근혜정부의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2년간 활동한 경험을 먼저 적고 있다. 100명이 넘는 각 문화 분야 전문가들이 대통령이 입장하기 한 시간 전에 대기해 ‘리허설’을 하고, 정작 회의에선 대통령만 발언하고 끝나는 청와대 회의는 한 마디로 ‘연출된 쇼’요, 대통령 1인을 위한 보고회였다. 위원들은 융성위가 하는 일을 신문을 통해서나 알게 되는 ‘들러리’요, 문화융성은 전형적인 ‘전시행정’이었다. 유교적 가부장 문화의 집약인 것이다.

한국의 사회문화에서 언어, 특히 존비어(尊卑語)와 호칭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는 노상 서열타령과 아래위를 나누는 경직된 권위주의이며 이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존비어와 호칭이다. 반말하는 사람은 존대어를 쓰는 사람보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게 된다. 호칭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you’처럼 평등하고 대등한 호칭이 우리에겐 없다. 전형적인 유교적 집단주의 사회에서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형, 오빠, 누나 등의 친족관계를 사회관계에서도 그대로 쓴다.

‘∼같아요’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도 개인은 없고 ‘눈치문화’가 만연한 결과다. 저자는 반말을 없애든지 최소한으로 줄이고, 호칭에서도 서열을 나누지 않는 명칭으로 가야 우리 사회에 필요한 관계의 평등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관혼상제는 현대 한국인들이 문화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통과의례다. 저자는 우리의 통과의례는 어떤 문화적 전통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겉껍데기만 남았다고 본다. 한국의 종교와 관련해 기독교든 불교든 비종교적인 가르침이 횡행하는데도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한국 문화의 기이한 면모이다.

저자가 짧은 시간에 최빈국에서 오늘날 같은 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잠재력을 무시하진 않는다. 그는 한국은 물질적인 발전만 이루었지 정신 부문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오히려 퇴보했다고 본다. 이러한 한국의 사회 문화가 본래의 저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저자는 해결책 중 하나로 새로운 개념의 연구소(싱크탱크)의 설립을 제안한다.

정부 관료의 간섭이 없는 자율적인 조직, 사람과 사회의 가치관처럼 기본적인 문제를 다루는 연구, 자유로운 끝장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분위기 등이 전제조건이다. 해결책치고는 다소 의외지만, 한국 문화의 저변을 바꾸는 것은 국민의 집단지성에 불을 붙이기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며, 그런 새 문화수립을 위해 우리 모두 나서는 데 싱크탱크가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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