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함께 살다 / 안외순 지음 / 글항아리

좌고우면하지 않고 꾸준하게 출간해온 시리즈 교양서가 본의 아니게 ‘시의적절한 출판’이 되어버렸다.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국학진흥원이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에 답을 던지다’ 시리즈 열네 번째로 펴낸 이 책은, 정치에 관한 유교의 오랜 지혜와 함께 ‘바람직한 정치지도자’의 모습을 모색한다. ‘오래된 질문’이란 시리즈 제목을 달고 있지만 작금의 정치현실 탓에 공교롭게도 ‘지금의 질문’에 답을 하는 형국이 됐다. 물으나 마나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조직의 국정논단 사건 때문이다.

유교와 정치의 결합은 자연스럽다. 본디 유교의 출발이 군주나 관료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를 설파하는 정치학이자 정치사상 체계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서구열강의 식민통치 영향으로 유교적 통치체계가 서구 민주주의의 대척 지점에 놓이면서 유교가 지향하는 정치는 비근대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이런 과정에서 현실정치 체계였던 유교는 이상적인 윤리의 지위로 강등됐고 결국 유교는 윤리학이나 도덕, 철학쯤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책은 유교 정치학 이론으로 읽힌다. 저자는 우선 유교로 조명한 정치의 목적과 방식, 요소 등을 두루 살피면서 정치 현실에 대한 유교의 통찰력을 다뤘다. 그리고 유교 고전인 사서, 즉 논어와 맹자, 대학, 중용 중에서 정치 관련 언술을 뽑아내 번역문과 풍부한 해설을 곁들였고 맨 뒤에다가는 한문 원전을 실어두었다.

저자는 조선왕조의 군주들이 다른 문명권의 지배자와는 다른 품격을 가진 것이 유교적 이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비선 조직의 국정농단을 개탄하면서 입에 올리는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고…”란 말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왕조시대 정치에는 무릇 유교라는 바탕이 있었다. 유교가 정치원리로 작동하던 때였다면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이든 방벌(무력 정권 탈취)이든, 혁명으로 쫓겨나도 열두 번은 더 쫓겨났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군주의 잘못에 서릿발 같은 간언을 하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사직으로 맞섰던 왕조국가의 선비들은, 국정농단을 자행했던 비선에게 두 손을 비비며 자리를 보전해 온 지금의 정치인이나 관료들과는 격이 다르다. 권력에 꼿꼿하게 맞섰던 대표적인 선비라면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인 남명 조식을 들 수 있겠다. 그가 명종에게 올린 상소문 ‘단성소’는 지금 읽어도 간담이 다 서늘해진다. 그는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고 하늘의 뜻도 민심도 떠나버렸다.…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며 시퍼렇게 날을 세워 명종을 비판했다. 어디 그뿐일까. 대비인 문정왕후를 ‘깊숙한 궁중의 한낱 과부’로, 임금인 명종을 ‘외로운 후계자’로 지칭했다. 모멸적인 직언에 왕은 격분했지만 조식은 무사했다. 신하들이 조식의 충정을 높이 사야 한다며 처벌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왕조시대에 유교적 정치는 이렇게 작동했다.

유교 정치의 군주와 지금의 권력이 전혀 다른 점 또 하나. 조선의 군주들은 모든 정치의 궁극적 책임을 자신이 지고자 했다. 심지어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도 자신의 부덕을 탓했고 국정도 쇄신하고 반찬 가짓수도 줄여보고 목욕재계하면서 책임을 지려 했다는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인물들이 서로 국정농단의 책임을 떠넘기거나 ‘모른다’며 입을 닫고 있는 지금의 상황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책이 조명하는 건 정치를 바라보는 유교의 오랜 지혜다. 맹자와 논어를 짚어가며 ‘민본(民本)’과 ‘위민(爲民)’의 가치를 얘기하고 힘이 아닌 도덕으로 다스리는 정치구조를 들여다본다. 백성을 부자가 되게 하고 교육하며 사회적 가치분배를 공평하게 하는, 왕도정치이자 이상정치로 가는 길을 모색하기도 한다. 책은 유교적 정치철학을 박제된 형태로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도덕 정치나 민본·위민의 원리구현에 실패한 경험이 많은 유교와 사회 양극화 가속화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타성이 약점으로 드러난 민주주의를 결합해 배려와 정의를 추구하는 이른바 ‘유교적 민주주의’로 대안을 내세우기도 한다. 다소 관념적이긴 하지만 민주주의의 ‘배타적 소유공동체’를 민주주의와 유교를 결합한 ‘배려적 공존공동체’로 이끌어가자는 주장이 신선하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박경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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