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시원을 찾아 유랑한 북방의 시인 백석(본명 백기행)은 1912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났다. 민족운동가 고당 조만식이 오산학교 교장으로 재직했던 시기에 오산소학교, 오산학교, 오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고 동향의 선배 시인 김소월을 몹시 동경했다.

1930년 조선일보 신년현상문예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었고 같은 해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1934년 귀국해 조선일보에서 근무했으며 1935년 8월 30일자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定州城)’을 발표했고, 이듬해 1월 20일 시 33편을 실은 첫 시집 ‘사슴’을 펴냈다. 이후 함흥 영생고보 교원으로 전직했다가 1938년 서울로 돌아와 ‘여성’지 편집에 다시 관계했고 1939년에는 만주의 신경(지금의 장춘)으로 떠나 유랑생활을 했다.

광복 직후 고향인 정주로 돌아가 스승인 조만식을 도우며 분단 과정에서 북에 남았다. 북에 남은 백석은 시작 활동 대신 러시아 문학작품 번역과 동화시 창작 및 아동문학에 관한 글을 발표하며 아동문학 분과에 참여했다. 그러나 문학의 도식화에 반대한 후유증으로 1958년 10월 당으로부터 ‘붉은 편지’를 받고 1959년 1월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에 있는 국영협동조합으로 내려가 양치기 일을 하다 1996년 타계했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가장 극심하게 진행되었던 시기에 작품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친일시가 없고 동시에 식민치하의 참상을 고발한 저항시도 없다는 점, 그리고 정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며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삶을 살다간 매력이 더해지면서 백석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자 지속적으로 가장 많이 연구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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