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골프채 선진국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인물이 있다. 박용관(61) ㈜델타인더스트리 대표가 주인공이다. 골프채 샤프트 개발에만 30년 이상 매달려 온 ‘장인’ 박 대표는 세계 최초로 25g짜리 샤프트를 개발해 제품화에 성공하면서 일본의 자존심을 무너트렸다.
지난 3일 경기 김포시 대곶면 ㈜델타인더스트리 본사에서 박 대표를 만났다.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게 박 대표가 지금까지 샤프트와 씨름하며 터득한 ‘1g 철학’이다. 일본 기업들은 샤프트 무게를 1g 줄이기 위해 연간 수백억 원의 돈을 쓰지만 박 대표는 직원들과 부대끼며 몇 달 동안 밤샘 작업을 하면서 개발에 몰두해왔다. 박 대표는 24g짜리 샤프트도 개발해 테스트 중이다. 박 대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깃털처럼 가벼운 샤프트를 고안했지만, ‘나홀로’ 앞서간 탓에 아직 빛을 보지는 못하고 있다. 가벼워진 샤프트만큼 클럽 헤드 역시 기술력이 따라야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헤드의 초경량화는 진척이 더디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만든 샤프트는 종전 최경량이던 일본 후지쿠라사의 29.5g보다 무려 4.5g이나 가볍다. 30g대가 ‘초경량’으로 불리고 있으니 박 대표가 개발한 25g짜리는 깃털에 비유할 수 있다. 박 대표의 깃털 샤프트 개발 소식은 일본에 알려졌고, 콧대 높은 일본기업에서 박 대표를 찾아와 수출계약까지 맺었다.
박 대표가 상표 없이 샤프트를 일본에 보내면 일본에서 브랜드를 붙여 최고가인 1개당 12만 엔에 판매된다. 경쟁제품인 후지쿠라 샤프트는 국내에서 90만 원대에 팔리고 있다. 박 대표가 일본에 보낸 샤프트는 역수입돼 국내에서 150만 원 이상에 팔리고 있다.
박 대표는 1980년대 골프채 샤프트, 낚싯대 소재인 카본 원단을 생산하는 회사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카본’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샤프트 개발에 평생을 바쳤다. 박 대표는 1990년 델타인더스트리를 창업했고 각종 브랜드의 골프채 샤프트를 생산해왔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랭스필드, 엘로드 등에 들어간 샤프트를 공급했다. 많을 땐 월 700∼800세트를 만들었다. 요즘엔 국산 골프채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주문량이 뚝 떨어진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골프채는 헤드-샤프트-그립으로 구성되며, 샤프트는 골프채 성능의 70%를 좌지우지한다. ‘샤프트 장인’ 박 대표의 골프 실력이 궁금해 물었더니 “샤프트를 만들면서 잠깐 배웠던 골프를 그만두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업 초창기 시절 한 원로프로와 ‘왕싱글’ 투자자에게 자신이 개발한 샤프트를 끼워 줬더니 “너무 잘 만들었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브랜드가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그들 정도의 기량이면 다른 샤프트를 끼워도 됐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골프 기량이 수준급이면 자신의 제품에 만족하고, 내 제품이 가장 좋은 줄 알기에 발전 없이 퇴보할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보기 플레이였던 골프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평일이면 어김없이 연습장에 간다. 테스트를 위해서다. 전날 밤에 만든 샘플을 가져가 연습장에서 점검해보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생산 담당자에게 보완할 점을 조언하면서 반복적으로 업그레이드해왔다. 그리고 최종 시제품이 나오면 감각이 뛰어난 몇몇 프로들에게 최종 테스트를 맡기고 평가를 경청한다. 박 대표는 브랜드를 알리는 마케팅 대신에 연구·개발(R&D)에 매달렸고, OEM으로 나가는 샤프트를 제작하면서도 R&D에 집중투자해 기술 수준을 끌어 올렸다.
박 대표는 10년 전 카본-그라파이트 소재를 사용해 세계 최초로 ‘스텝 샤프트’를 개발했다. 그라파이트 소재의 단점을 보완해 스틸 샤프트처럼 ‘마디’를 만들어 강도를 높였던 것. 특허를 받아 판매를 자신했던 박 대표는 자체 브랜드인 ‘탱크’를 달고 출시했지만 브랜드 파워가 없어 히트 상품이 되지는 못했다.
박 대표의 베스트 스코어는 82타. 골프채에 대한 메커니즘을 훤히 꿰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신통치 않다. 2년 전 인천 영종도 스카이72골프장 하늘코스에서 기록했다. 월례회에 자리가 비었다는 지인의 초대 덕에 새로 제작한 클럽 테스트를 겸해 ‘대타’로 나갔다. 때마침 여성 동반자에게 박 대표 자신이 쓰던 남성용 드라이버를 빌려줬더니 잘 맞는다며 18홀을 마칠 때까지 손에 놓지 않았고 다음 날 박 대표를 찾아와 구입했다.
10여 년 전부터 박 대표의 라운드는 곧 필드 테스트가 됐다. 한 달에 한두 번밖에 나가지 않지만, 80대 스코어를 유지한다. 박 대표는 “이론적으로 테스트를 많이 해온 덕분”이라며 “물론 장비도 좋기 때문”이라고 비결을 소개했다. 그러나 쇼트 게임 경험 부족이 그의 한계. 박 대표는 “볼 한두 개로 18홀을 모두 돌 만큼 ‘롱 게임’은 좋은 편이지만 그린 주변에서는 경험이 달리는 탓에 실수가 자주 나온다”며 웃었다. 드라이버 거리는 200m 이상을 보내는 편이다.
박 대표는 “샤프트가 가벼우면 헤드 스피드가 빨라지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동일한 클럽으로 헤드 스피드를 1마일 높이면 캐리 거리가 3야드 정도 늘어난다는 로봇 테스트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는 것. 가벼운 클럽을 사용하면 스피드가 빨라져 비거리가 늘어나지만, 문제는 타이밍을 맞출 확률이 어렵다는 것. 따라서 스윙 밸런스를 찾는 게 관건이다. 박 대표는 “자신이 만든 샤프트를 사용한 아마추어 중에는 최고 70야드까지 비거리가 늘어난 골퍼가 있다”며 “앞으로도 제품 개발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포 = 글·사진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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