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일 “국가정보원을 ‘해외안보(安保)정보원’으로 개편해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대(對)북한, 해외, 안보 및 테러, 국제범죄를 전담하는 한국형 CIA(미 중앙정보국)로 만들겠다”는 등의 ‘권력 적폐 청산 방안’을 발표했다.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지도 않은 문 전 대표가 사실상 본선 공약을 내놓는 것은 ‘김칫국’을 마시는 격이라는 등의 비판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논란보다 유력한 후보의 안보 인식에 심각한 결함이 감지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국정원에도 개혁해야 할 측면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방향은 세계 일류 정보기관으로 발전시켜 북한 사정을 더 잘 파악하고, 안보 위해 요인을 더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통일까지는 북한 권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 전 대표의 공약은 이런 안보 수요를 무시한 탁상공론에 가깝다. 첫째, CIA가 해외 업무에 주력하는 것은 미 연방수사국(FBI)이란 강력한 국내 방첩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보 업무에서 손을 떼려면 FBI 수준의 방대한 국내 방첩기관이 전제돼야 한다. 문 전 대표는 “대공(對共) 수사권은 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하겠다”고 한다. ‘안보수사국’을 FBI 수준으로 거대하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국내 대공·방첩 능력을 약화 또는 무력화시킬 것이다.

둘째, 미국이나 영국이 정보 조직을 이원화할 수 있는 것은 주 전장(戰場)이 해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주된 대상은 북한이고, 주된 활동 영역도 한반도다. 대북·방첩 정보 영역을 국내와 해외로 나누는 것도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셋째, 보이지 않는 적이 많아지면서 정보기관의 국내 활동 강화가 세계적 추세다. CIA도 9·11테러 이후 국내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중국·일본도 마찬가지고, 독일에선 ‘게슈타포 트라우마’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마지막으로, 노무현정부가 경찰의 대공수사 조직과 인력을 대폭 줄인 바 있다. 이석기 두 차례 특별사면도, 일심회 수사 흐지부지도, 국가보안법 폐지 노력이 집중된 것도 노 정부 때였다. 그런데 이제 국정원의 대공 기능도 없애겠다니,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을 빌미로 반국가 활동의 자유를 넓혀 주는 개악을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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