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방송과 가디언, AP통신 등은 이란 현지 언론들을 인용해 이날 라프산자니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라프산자니는 1989년 7월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이어 1993년 6월 치러진 제6대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에도 성공함으로써 1997년까지 이란을 통치했다.
이란국영TV는 “이슬람 혁명의 길에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라프산자니가 하늘로 떠났다”라고 전했다.
라프산자니는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가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서방에 문호를 개방했다. 해외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민간투자를 활성화시켰다. 여성 인권 향상에도 힘을 기울이고, 이슬람법에 근거한 극형을 반대하는 등 개혁적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라프산자니는 1983년부터 최근까지 34년간 국가지도자운영회의(Assembly of Experts) 위원으로 재직했다. 2007∼2011년에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의장을 지냈다. 이 헌법기관의 운영위원들은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라프산자니는 또한 1989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국정조정위원회(The Expediency Council) 의장을 맡았다. 국정조정위원회는 최고지도자를 보좌하고 장기 국가정책을 입안하는 일을 한다.
라프산자니는 1934년 8월 25일 이란 케르만주 라프산잔(Rafsanjan)의 작은 마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14세 때 이슬람 성지 콤(Qom)에서 이슬람법을 공부했다. 1960년대에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문하에서 왕정타도 운동에 합류했다. 1979년 ‘혁명 1세대’로서 호메이니를 도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슬람혁명 직후인 1979년 11월부터 9개월간 혁명 정부의 내무장관을 지냈다. 1980년부터 9년 간 이란 의회(마즐리스) 의장을 역임했다.
라프산자니는 현재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가까운 혁명동지였다. 라프산자니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라프산자니가 개혁적인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간 정치적 협력관계는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디언은 라프산자니의 죽음은 하산 로하니 현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정치적 타격을 입힐 것으로 전망했다. 라프산자니는 지난 2013년 대선에서 중도개혁 노선을 표방한 로하니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이후 정치적 후견인 역할을 해 왔다. 이에 앞서 1997년 라프산자니는 이란의 대표적인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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