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법학

새해 들어 첫 번째 맞은 지난 주말, 광장과 거리엔 탄핵 찬반으로 달아오른 열기가 여전히 뜨거웠다. 대통령 탄핵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손으로 넘어갔다. 헌재(憲裁)의 탄핵심판 변론 절차에서 이미 봐 잘 알 수 있듯이 이제 정치적인 공방은 법적인 공방으로 전환됐다. 물론 이것은 법리적인 공방에 무게가 실렸다는 뜻이지 정치적인 색채가 전적으로 탈색됐다는 뜻이 아니다. 재판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는 그 대부분이 법률가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치적인 주위 환경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와 정서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서,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민심과 이에 반대하는 태극기 민심이 여전히 주말이면 광장과 거리를 메울 심산으로 보인다. 탄핵소추가 시작되고 재판이 개시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이제 촛불 인파보다 태극기 인파가 수적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들이 흘러나온다. 심지어 촛불 민심에 방조한 언론과 지자체까지 탄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촛불로써 또는 피 끓는 태극기 함성으로써 소중한 삶의 시간을 불태울 때가 아니다. 만에 하나 그것으로써 헌법재판에 영향을 끼칠 의도라고 한다면 이는 매우 유치한 생각일 뿐 아니라 위험스럽기조차 한 것이다.

최근 들어 마음에 내키지 않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고 사법을 싸잡아 공격하는 일탈된 행태들을 종종 눈에 띈다.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한낱 오류도 없는 절대적인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실현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오랜 이성과 문화의 발전에 의해 축적되고 연마돼온 오늘날의 재판 제도는 어느 한쪽 당사자나 밖에서 보는 일반 이해관계인들의 관점을 뛰어넘어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것을 그때그때의 이해관계의 관점에 따라 흔들거나 힘으로 조정하려고 든다면 이미 그것은 법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불한당이거나 폭도들 수준의 행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일반재판과 사법부의 독립성이 법치와 민주 시민사회에서 이토록 중요하다면 탄핵재판과 헌법재판소의 권위에 대해서는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광장과 거리에서 촛불과 태극기를 거두고 차분히 헌재의 재판을 지켜볼 때다. 별 사고 없이 진행되는 축제놀이 같은 시위 문화, 어느 정도 순발력 있는 조절 능력과 스스로 정화하는 자정력을 보여준 시위에 대해 안도하고 평가하는 목소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탄핵을 겨냥해 찬·반 간 여론몰이를 하는 일체의 행태들은 그 동기가 매우 저급하고 불순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그것이 혹 진보를 표방하든 보수를 표방하든, 또는 애국을 내세우든 간에 성숙한 시민사회의 안목에 비춰보면 난폭 내지 광폭 운전에 비유할 수 있겠기에 말이다.

모든 헌법상의 자유와 기본권은 질서와 안정,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일정한 내재적 제한을 담고 있다. 집회·결사의 자유, 정치적 항의의 자유도 체제 전복을 꾀하다가 유죄 판결이 확정된 자들을 석방하라는 촛불시위로 변질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허무는 반대자들에게도 관용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아무쪼록 탄핵재판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그리고 재판관들이 맑고 정온한 분위기 속에서 심리와 판단을 이어갈 수 있도록 자제력을 발휘할 때라는 점을 들뜬 언론, 광장과 길거리 시민들 모두 깊이 성찰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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