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현장을 가다 - ③ 첨단기술이 바꾼 창작
드론 촬영 혁명적 영상 제공… 시간·비용·공간제약도 벗어
구글이 개발 헤드기어 이용해 단순 감상 아닌 참여까지 가능
예술에 첨단 디지털 기술 접목… 문화 생산 - 소비자 벽 허물어
4차 산업혁명이 문화계에 가져올 변화는 기술의 진보에 따른 문화예술 영역의 ‘확장’과 ‘융합’으로 요약된다. 확장은 표현의 주체나 객체, 방식이 다양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융합은 첨단 기술이 예술적 융합을 가능하게 해 새로운 장르를 창조함을 뜻한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 속에선 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하다. 누구든지 첨단 디지털 장치를 이용해 예술 행위를 할 수 있고, 가상현실(VR)과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이용해 참여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몇몇 분야별 선도업체들은 전문적 문화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의 문을 강하게 노크하고 있다.
◇영화, 시각 특수효과와 드론영화제
영화 속에서 판타지를 현실처럼 재현하는 시각 특수효과(VFX) 분야에선 덱스터 스튜디오, 레드로버, 화이브라더스 등이 세계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덱스터 스튜디오는 ‘국가대표’ ‘미스터 고’ 등을 연출했던 김용화 감독이 만든 시각효과 전문업체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한 고릴라가 중국시장에서 통하면서 최근 중국 판타지 영화 ‘몽키킹3’ ‘귀취등’ 등과 VFX 공급계약을 했다. 레드로버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3D 모니터와 카메라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넛잡’의 성공에 한몫한 데 이어, 올해 8월 개봉 예정인 ‘넛잡2’의 작업에도 참여했다. 또 화이브라더스, 디지털 아이디어, 매크로그래프 등 강소(强小) 업체들이 약 5000억 원대로 추정되는 중국 VFX 시장을 목표로 땀을 흘리고 있다.
방송과 영화에서 드론을 이용한 촬영은 시청자들에게 가히 혁명적 시점을 제공하고 있다. tvN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 자주 등장한 고공에서의 부감(내려다봄) 신은 모두 드론으로 촬영한 것이었는데 드론에 소형 카메라를 달아 공중에 띄움으로써 제작사들은 시간과 비용, 공간적 제약에서 크게 벗어났다. 기존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아예 높은 곳으로 이동하거나 ‘지미집’(크레인 위에 설치한 카메라)을 설치해야 했다. 그러나 드론으로 인해 이제는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자유로운 영상을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서울이카루스드론국제영화제는 국내 최초의 드론영화제로, 촬영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확장 및 융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미술, LED와 VR로 그린 추상
미디어 아트와 설치미술 분야에도 혁명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가 선보인 작품들은 미술계에서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엿보게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미술관에서 열린 ‘포세이드리의 눈빛’전엔 이 작가의 영상 및 설치조각 11점이 전시됐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시 제목과 동명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다. 레이저 커팅된 자개 가구에 발광다이오드(LED) 모니터를 넣은 형식이다. 가장 전통적 가구인 자개와 첨단의 LED를 융합함으로써 비가시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말까지 부산 수영구 망미동 F1963(구 고려제강 수영공장)에서 성황리에 종료된 부산비엔날레에서도 이 작가의 ‘혼혈하는 지구’가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은 3D 입체 그래픽을 활용한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구글과 협업한 것이다. 관람객은 구글이 개발한 헤드기어인 ‘틸트 브러시’를 쓰고 영상조작장치를 이용해 한자 이미지 위에 자기만의 그림을 그렸다. 첨단 기업인 구글의 개발품과 이 작가의 작품이 한데 어우러진 것이고, 객체였던 관람객이 예술 행위의 주체가 되는 순간이었다.
◇공연·패션, 360도 영상과 센서가 달린 신소재
공연과 패션에서는 1∼3차 산업혁명에서 시도된 변화 이상의 파격적 변신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흥행에 성공한 라이선스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국내 연극계 처음으로 인터랙티브 미디어를 시도해 화제가 됐다. 배우가 몸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영상과 조명으로 보여줬다. 또 지난해 10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등장 인물인 배질의 화실을 360도 VR 영상으로 재현해 눈길을 끌었다. 관객들은 다양한 각도에서 화실을 볼 수 있어 마치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패션계에선 재료과학 분야의 엄청난 발전으로 소재 자체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온도 변화에 반응하는 신소재다. 구글과 한 일본 업체는 지난해 센서가 들어간 전도 섬유를 개발했다. 착용자의 체온을 감지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패션업체들은 이를 이용해 첨단 의류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이현학 한국패션협회 팀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패션업계에서는 소재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섬유 자체에 센서가 내장돼 있어 의류 착용자의 체온을 저장하고 조절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출판, 내 손으로 ‘맞춤형’ 디자인
패션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에 가장 둔감할 것 같았던 분야인 출판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출판사 스윙밴드는 ‘리브르 아를리에(Livre a relier·예술 제본)’ 형식에서 따온 ‘하우스 오브 픽션’을 내놓았다. 리브르 아를리에는 제본하지 않은 상태의 책을 말한다. 텍스트가 인쇄된 내지를 접착제로 붙이지 않고 그냥 표지 사이에 끼워 놓은 형태다. 이는 독자들의 개성과 취향을 고려한 것이다. 책의 소비자였던 독자들이 웹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돼 자신만의 ‘맞춤형’ 책을 편집할 수 있도록 했다.
‘4차 산업혁명 앞으로 5년’의 저자 이경주 씨는 “5세대 통신기술 및 인터넷 프로토콜 버전6(IPv6)에 의해 사람과 사물 간에도 정보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가히 혁명적인 시대가 올 것”이라며 “한국은 인터넷, 통신과 함께 문화의 영역인 소프트웨어·서비스와 게임 등에서 축적한 경쟁력을 더욱 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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