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 참 어려운 얘기다.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이후 40억 년 동안 변화해온 과정을 추적하는 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
유한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에겐 관심 밖의 일 일지도 모른다. 그저 약 150년 전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라는 혁명적 주장을 담은 ‘종의 기원’을 발표했고, 그 뒤로 돌연변이와 생존투쟁을 거쳐 가장 적합한 형질을 갖게 된 생물 종(種)이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받아들이게 됐으며, 이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결국 호모 사피엔스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책은 이런 광대한 진화론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다. 나아가 종의 기원 이후 진화론이 꽃피운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다룬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윌리엄 해밀턴의 ‘포괄 적합도’, 대니얼 데닛의 ‘지향계 이론’ 등 사회학, 성(性)학, 도덕심리학 등으로 확장된 진화론을 파헤친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을 재정의해야 한다. 동·식물에 대한 학문을 넘어 인간 및 인공물을 포함하는 이론으로의 확장을 말한다.
진화학자인 저자에 따르면 인간은 ‘다윈 기계’다. 다윈 기계란 도킨스가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 기계이며 운반자”라고 규정한 것에 ‘밈(Meme) 기계’를 합친 개념이다.
밈은 도킨스가 말한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다. 모방의 단위 혹은 문화 전달의 단위쯤으로 해석된다.
유전자를 통한 생물학적 복제와 더불어 문화적인 행동양식이나 지식의 복제를 뜻한다. 노랫말, 캐치프레이즈, 패션의 유행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인간의 모방 능력이 두 번째 복제자를 탄생시켰고, 이 점에서 인간은 지구를 지배하는 문명을 가진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현대에서 어떤 양태로 ‘진화’하고 있는가.
진화론은 생물학을 넘어 학문의 전 범위로 확대되는 추세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 진화경제학, 진화미학 등 다양하게 가지를 뻗고 있다. 특히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고 밝히는 진화심리학에는 21세기 새로운 과학적 인간학이 숨어 있다.
인간 눈의 공막(흰자)에 대한 분석, 포르노 소비 행태에 대한 남녀의 성차(性差), 진화적 혁신의 원리를 보여주는 ‘이보디보’(evo-devo·진화발생생물학) 등이 구체적 사례다.
공막은 인간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다. 투명한 결막과 흰 공막을 가진 종은 인간뿐이다. 인간은 공막 때문에 타인의 시선(마음)을 읽을 수 있고, 따라서 동물에 비해 한 차원 높은 협력을 한다.
인간 연애 본능의 성차가 포르노 소비 시장의 남녀 성차와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해석도 흥미롭다.
시각적 상상력에 의존하는 포르노의 소비자는 거의 남성인 반면, 친밀도가 높은 대상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로맨스 소설의 독자는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이보디보는 생물 발생과 진화의 변화 과정에 관한 최근의 진화이론이다. 생물학의 통섭이라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이자 진화학자인 저자는 지난 10여 년 연구의 결실을 3권의 책에 담았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치열한 논쟁을 다룬 ‘다윈의 식탁’(2008)을 시작으로 현대 과학자들의 책과 사상을 소개한 ‘다윈의 서재’(2015)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이자 ‘3부작’의 완결편이다.
진화론 석학들의 가상대담이라는 픽션을 도입해 진화론의 무게를 덜어냈던 1편에 비해 내용이 퍽퍽해진 게 아쉽다. 하지만 저자는 “거인 골리앗(기존 인문사회학적 전통)을 상대하러 가는 꼬맹이 다윗(진화 인간학)인데 화장을 짙게 하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양해를 당부했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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