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의 뭔가가 겨울의 언 땅으로 저를 이끌었어요. 아마 맹목적인 삶의 허기를 느끼고 진정한 나 자신과 대면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일간지 문화부 기자 출신의 오정국(61·한서대 교수) 시인이 자신의 6번째 시집 ‘눈먼 자의 동쪽’(민음사)을 펴냈다.
2011년 시집 ‘파묻힌 얼굴’ 이후 지난 6년간 묵묵히 써온 글 중 71편을 추렸다. 시집에는 요즘 날씨처럼 매섭고 쓸쓸한 겨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한겨울 내설악에서 중앙 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동토 비슈케크 그리고 겨울이면 유난히 찬바람이 분다는 제주 한경면 고산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다.
‘내설악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시가 20편, ‘비슈케크 일기’ 6편, ‘제주시편’ 5편 등이다. ‘독작’(獨酌), ‘저수지라고 부르기엔’ 등 몇 편은 강원 원주시의 한적한 저수지가 배경이다.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간 것은 아니다. 6∼7년 전 학교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강원 인제군 북면 만해마을에 글도 쓰고 쉴 겸해서 간 것인데 그때 미시령과 내설악을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존재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표제작 ‘눈먼 자의 동쪽 이야기’에는 이 같은 감상이 깊게 배어 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 이야기∼ 눈먼 자의 동쪽이 거기였던가∼ 이제는 44번 국도 너머로 사라져 간 이야기, 딱 맞아 떨어지는 마침표도 없이.”
비슈케크는 2013년 대학 연구년에 다녀왔다. 초봄에 찾았으나 그곳엔 아직 겨울이 웅크리고 있었다.
“여름철엔 그렇게 풍광이 좋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굳이 추울 때 가게 됐다. 황량함, 험준함, 헐벗은 외로움에 또 한 번 부딪치고 싶었다.”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인 제주를 찾은 것도 찬바람이 시린 겨울이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찍듯 담담한 언어로 시집을 구성했다.
“폭탄처럼 생겨 먹은 콜라비, 고산리 겨울 벌판을/ 뒹굴고 있었다 몸통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이/ 푸른 도화선으로 꽃을 몰아가는 힘이/ 눈 덮인 땅바닥을 움켜쥐었다.”(‘콜라비’-제주시편4)
작품 해설을 쓴 조강석 문학평론가는 “눈먼 자의 동쪽은 맹목(盲目)과 적빈(赤貧) 사이를 걷는 이의 균형잡기에 비견된다”면서 “최근 이처럼 벅찬 메타시(어떤 속성에 관한 반성과 성찰을 추구하는 시)를 읽은 적이 없다. 이런 독백이 주는 울림이 큰 것은 불과 얼음 그리고 맹목과 적빈의 편력을 거쳐 온 이의 고해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오 시인은 1956년 경북 영양에서 출생했다. 1988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해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내가 밀어낸 물결’ ‘파묻힌 얼굴’ 등을 발간했다.
지훈문학상, 이형기문학상 등을 받았다. 대학 인문사회학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인구 기자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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