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송삼례 씨가 10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기쁜 표정으로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시각장애인 송삼례 씨가 10일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기쁜 표정으로 자신이 후원하는 아동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
‘아프리카 아동 돕는’ 시각장애 안마사 송삼례 씨

“건강, 돈, 친구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도 있었지만, 아프리카 아동을 후원하면서 저도 삶의 희망을 찾았습니다.”

시각장애인 송삼례(여·48) 씨는 태어난 지 100일 만에 고열 증세를 보이며 시신경에 손상을 입었다. 이후 학창시절 손목 신경이 끊어지는 부상으로 또 다른 장애를 갖게 됐다. 좌절을 딛고 안마사 등으로 일하며 악착같이 큰돈을 모았지만, 부동산 사기로 모은 돈마저 모두 잃었다. 삶을 포기하려던 송 씨는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해외 아동을 후원하며 삶의 희망을 찾았다.

송 씨는 지난 1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의사의 오진으로 열을 내리지 못해 평생 눈에 장애를 갖게 됐다”면서도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남고 싶었다”고 말했다. 송 씨의 부모는 송 씨가 장애 때문에 좌절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뭐든지 스스로 할 수 있게 키웠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 이런 일은 해선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며 “‘책장 몇 번째 줄, 몇 번째 칸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라’고 시키고, 방 청소도 하게 하셨다”고 회상했다. 송 씨가 길에서 넘어져도 부모는 “네가 눈이 안 보여서 넘어진 게 아니라, 발이 걸려 넘어진 것일 뿐”이라며 기운을 북돋웠다.

송 씨는 1977년 취학과 함께 큰 좌절을 맛봤다. 일반 학교에 진학한 송 씨는 교사가 ‘이것’ ‘저것’ ‘그것’ 같은 말을 할 때마다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며칠 만에 맹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송 씨는 “당시 전북맹학교는 학생 관리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학습보다는 노동을 강요했고, 점자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송 씨는 1980년 대전맹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나 새 학교에서 그를 기다린 건 두 번째 좌절이었다. 13세 때 창문을 청소하던 중 깨진 유리창에 손목 신경이 끊어졌다. 송 씨는 “손으로 점자책도 읽지 못하게 되니 모든 게 무너진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떨어져 하루에 8시간씩 물리치료를 받는 생활이 8년이나 이어졌고, 사회에 대한 반항심이 생겼다. 친한 친구들과 다퉜고 선생님에게 대들었다. 동네 선배들과 술에 빠져 살기도 했다.

방황하던 송 씨는 맹학교에서 고교 과정 졸업을 1년 앞두고서야 비로소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이 대학 진학, 침술, 역학전문가, 피아노 조율, 안마사 등 직업을 고민할 때도 송 씨는 손이 자유롭지 못해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담임교사가 송 씨를 데리고 ‘재활 특훈’을 시작했다. 손목 신경이 온전하진 않았지만, 결국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1990년 21세 나이로 늦게 졸업하긴 했지만 취업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송 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10년 동안 돈을 많이 모아 통장에 10억 원이 있었고 집 한 채를 산 적도 있었지만, 부동산 사기로 가진 돈을 한순간에 잃었다”며 “삶을 포기하고 싶었고 우울증 약을 먹게 됐다”고 털어놨다.

절박한 순간에 송 씨에게 희망을 준 건 국제구호활동가 한비야 씨가 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이었다. 평소 점자책 읽기를 좋아하던 송 씨는 자신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아프리카 아동의 현실을 알게 됐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울증 약도 끊었다. 이후 송 씨는 2008년부터 꾸준히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을 통해 잠비아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송 씨는 후원을 지속하기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도 취득했고, 지역 복지센터에서 시간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송 씨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고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아버지 말씀은 ‘모든 것을 계산적으로 대하라’는 게 아니라, ‘물 한 잔이라도 내가 그동안 받았던 모든 것들이 다 누군가에게서 온 것이므로, 나도 남에게 돌려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라며 “삶이 힘들 때마다 이를 마음에 새겼고 나 자신도 희망을 찾았다”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cesc3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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