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물리적 공간 개념에도 변화가 생겼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급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혈육의 정이 그렇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렇다. 그런데 혈육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MBC 주말드라마 ‘불어라 미풍아’는 분단과 이산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정치 현실에서 탈북자 가족과 실향민의 아픔을 주목한 가족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남북 분단이 고착되면서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마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탈북자와 실향민 가족의 사연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돋보인다. 탈북자를 낯선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한 현실에서 탈북자 가족의 남한 생활은 시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마카오 국제학교에서 인연을 맺었던 북한 소녀와 남한 소년이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사랑하면서 겪는 시련의 대부분이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에서 비롯한 것도 그래서이다.

마카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미풍(임지연)은 평양음악대학의 무용과를 졸업한 엘리트이다. 북한에서는 출신 성분이 좋고 외모 또한 뛰어난 재원이었지만, 남한에서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의 어머니 주영애(이일화)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탈북자에게는 허드렛일만 주어진다. 탈북 과정에서 총을 맞아 죽은 아버지(김대훈)와 오빠가 살아 돌아온다 하더라도 별로 달라질 바 없는 생활이다.

남한사회의 실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어렵게 모은 전세금을 사기로 날린 김미풍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장고(손호준)였다.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으로 도와줬던 김미풍이 어린 시절 마카오에서 만났던 왈가닥 소녀 김승희임을 알게 된 이장고는 두 사람의 인연을 신기해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이장고는 탈북자를 마뜩지 않아 하던 어머니를 설득해 김미풍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생각했지만 실향민 출신으로 남한에서 1000억 원대의 재산가로 성공한 할아버지 김덕천(변희봉)이 찾는 혈육이 김미풍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녀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된다. 탈북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웹툰작가 지망생 조희동(한주완)과 결혼해 김덕천 할아버지의 조카며느리가 된 박신애(임수향)가 김미풍으로 행세하면서 정작 진짜 김미풍을 궁지로 몰고 있기 때문이다.

박신애는 북한에서 도움을 받았던 김미풍 가족을 음해하고 미국으로 쫓아낼 음모까지 꾸민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김대훈이 살아 돌아와 아버지 김덕천을 찾으면서 박신애의 사기 행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는 김미풍 가족을 괴롭히는 박신애의 악행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으로 사건이 전개되면서 탈북자끼리의 대립과 갈등을 부각시킨다. 이로 인해 탈북자를 한민족이 아닌, 이방인으로 대하는 남한사회의 배타적 시선이 두드러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탈북자의 남한 정착기에 분단과 이산의 비극에서 비롯한 실향민의 아픔을 결합시킴으로써 민족 동질감보다 체제의 이질감이 더 커져 버린 정치 현실을 환기시킨 것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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