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위기를 돌파하는 전략에 대해 우리 정치인들이 각자 소리만 요란하게 내지르고 있다. 오케스트라 리허설 때처럼 모든 악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데 음악은 안 되고 있다. 지휘 리더십이 없는 탓이다.”
국제정치학자인 강성학(사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외정책이 삐걱거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한국지정학연구원 초대 이사장인 그는 최근 연구서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을 출간했다. 대학에서 30여 년간 강의해 온 그는 오랫동안 세계 평화 연구에 천착해왔다. 그의 저서들은 영국과 일본, 중국 등에 번역돼 국제정치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강 교수에 따르면, 국제 정치와 지리적 요건의 관계를 연구하는 지정학(地政學·geopolitics)은 20세기 초반 영·미와 독일 등에서 풍미했으나 이후 지역 패권을 추구한 나치즘의 유산이라는 등의 이유로 힘을 잃었다. 강 교수는 “그러나 한반도에서 지정학은 언제나 유효하다. 대륙 세력의 완충지대(buffer zone)이자 해양강대국의 교두보(bridgehead)이며, 또한 양 세력의 충돌지대(shatter-belt)라는 지정학적 위상이 변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륙세력으로 존재했던 중국이 해군력을 증강 시키며 해양세력으로서의 패권을 추구하는 이 시점에서 지정학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번 책의 1부는 동아시아 지정학을 다루며 중국을 ‘불만족 국가’라고 규정한다. 중화(中華)의 옛 질서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대외정책이 현실적으로는 현상을 타파하려는 도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책임 전가국가’다. 동북아 등에서 갈등 억제자(Deterrer) 역할을 해 왔던 미국은 어느 시점에서부터 균형자(balancer)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집권기에 이 시도는 가속화 할 것이다. 당연히 한국과 일본은 ‘책임 부담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일본은 이를 감내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한국은 어정쩡한 모습이다. “한국의 국방 전략은 미·일과의 동맹체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근년의 외교는 중국에 기울어져 있었다. 국제 정치에서 국방과 외교가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겠나.”

북핵을 빌미로 한반도가 패권 세력의 충돌 지대가 되는 위협에 처한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 리더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강 교수는 미국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지도력을 끌어온다. “링컨은 미합중국을 분열로부터 회복시켰으며 자유민주주의와 미국 문명을 발전시킬 길을 열었다.”
책의 2부를 구성하는 링컨의 리더십은 윈스턴 처칠, 마하트마 간디, 쑨원(孫文), 넬슨 만델라, 버락 오바마 등 세계의 지도자들에게 정치적 유산으로 계승됐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며 나선 후보군에서도 링컨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미지 구축에 링컨을 활용하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을 제대로 공부한 것 같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링컨 연구로 정평이 높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의 권유로 링컨 리더십을 공부하며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며 “특히 군사 문제에 대한 혜안으로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리더십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링컨은 전시 중 최고 사령관으로서 전쟁이 장기화할 것을 예상해 그에 따른 전략으로 휘하 장군들을 지휘했고, 전시에 유지하기 어려운 문민통제의 원칙으로 국민적 단결을 끌어냈으며 병참 지원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는 군사문제에 대한 훈련이나 교육을 받은 바 없지만, 스스로 전쟁 역사를 공부해 승리를 이루는 안목을 갖추고 그것을 단호하게 실천했다.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지도자라면 링컨의 승전 리더십을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 세계 역사의 주사위가 잘못 굴러서 우리 정부가 전쟁을 만날 경우에 반드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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