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큰 덩치만큼 묵직하다. 그리고 말 대신 행동이 앞선다. 더그아웃을 초토화한 건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 경기 도중 의자를 부숴 버리고, 난로까지 걷어차 선수단의 혼을 빼놓은 건 그만이 연출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화가 나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의자를 집어 던지고 야구방망이를 부러트린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거칠고 과격하다고 카리스마를 인정받는 건 아니다.
사실 그가 자주 화를 내고, 기물을 박살 냈다는 건 오해다. 그는 중앙집권제를 추구하지만 선수단 훈련, 관리는 코치진에게 일임했다. 자신은 선수단 운영의 방향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건 참모인 코치진에게 맡겼다. ‘간섭’을 최소화한 건 코치진의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자율성을 끌어올리는 순기능으로 이어졌다. 삼성의 이승엽은 일본에서 돌아와 2012년부터 3시즌을 김응용 감독과 함께했다. 이승엽은 “(김 감독 밑에서) 3년 있었지만, 대화한 건 모두 합쳐봐야 20분도 안 될 것”이라며 “처음엔 저를 보고도 무뚝뚝하게 지나치시기에 ‘저를 싫어하시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과묵한 성격이기에 보고도 못 본 척한 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관리를 코치에게 믿고 맡겼기에 선수에게 달리 주문하지 않았던 것.
물론 참지 못할 때도 있고, 한번 폭발하면 소문대로 부숴 버렸다. 선수 개개인이 아니라 선수단 전체의 기강을 잡아야겠다는 판단이 있을 때 발길질이란 ‘특효약’을 꺼냈다. 그래서 그의 폭발은 계산된 ‘작전’에 비유할 수 있다. 팀이 지고 있는데 더그아웃에서 잡담이 오가거나 웃음소리가 들릴 때 그는 분노를 표시했고, 선수단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김응용 회장은 “나보고 걸핏하면 뭘 집어 던지는 성질이 고약한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의자 부순 것 한 번, 난로 걷어찬 것 한 번뿐”이라며 “그런데 그 효과가 꽤 오랫동안 지속됐다”고 말했다.
우람한 풍채, 무뚝뚝한 표정과 달리 그는 따뜻한 인간미를 지니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부터 현장을 지킨 홍순일 야구전문 기자는 “김응용이란 인물은 겉으로 드러난 것과는 달리 순진하고 마음이 여리다”면서 “선수단을 운영하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가 잘못을 저지른 선수를 질책하거나, 그 책임을 코치진에게 돌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귀띔했다. 참모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 부하의 실수를 눈감아주는 배려가 김응용 카리스마의 본질이다.
△1941년 평안남도 평원 출생 △프로야구 해태·삼성·한화 감독 △2000 시드니올림픽 대표팀 감독(동메달) △삼성 대표이사 사장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국민훈장 석류장, 체육훈장 백마장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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